당신의 돈을 아껴드릴 작법서 추천

최악의 작법서와 최고의 작법서

by 정채린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습작생들은 거대한 미로 속에 던져진 기분을 느낍니다. 모든 문장이 불안하고 모든 캐릭터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런 막막함을 해소해 줄 열쇠로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작법서입니다. 저는 그 책들이 제 미로의 부분 부분을 밝혀주는 랜턴이 되기를 바랐지만, 모든 책들이 그러한 건 아니었습니다. 가끔 어떤 작법서는 지식의 안내자가 아니라 지도처럼 생긴 다른 어떤 것일 때가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읽은 작법서를 대강 세어보니 스무 권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중에서 최악의 작법서와 최고의 작법서를 뽑아봤습니다.




훌륭한 작법서는 미로를 관통하는 비밀통로의 지도이자, 작은 랜턴을 넘어 촬영용 거대한 조명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저의 막연한 아이디어들을 끌어모아 소설의 뼈대를 세우게 해주는 청사진이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란 보이지 않는 관념을 땅에 발 붙이게 하고 문장이라는 보이는 형태로 바꿔주는 연금술의 암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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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뽑은 최고의 작법서 1위는

로널드 B. 토비아스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입니다.

이 책은 이야기의 뼈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수십 년간 나침반 역할을 해온 고전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수천 년간 사랑받은 서사들을 분석하여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심리를 관통하는 핵심 플롯을 20가지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책 표지가 너덜너덜해 보이는 것은 이 책이 제 이십여 년 전 전공서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감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옆에 놓겠습니다.



제가 뽑은 두 번째 최고의 작법서는 김보영의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입니다.

이 책은 SF 작가를 위한 책이지만, SF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책은 쓰기 전, 쓰는 중, 쓰고 난 후로 나누어, 쓰기에 대해 실전적 조언을 전달합니다. 쓰고 싶다 또는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말고, 정말로 "쓰는 사람들에게" 선배 작가로서 그리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꼭 필요한 꿀팁을 군더더기 없이 말해줍니다. 사실 이 책은 저만 읽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만 글을 잘 쓰고 싶습니다만 인류애로 소개합니다.



제가 뽑은 세 번째 최고의 작법서는 이은희 작가의 『4줄이면 된다』입니다.

이 책은 이야기의 본질을 주인공의 내적 변화로 규정하여 복잡한 작법론을 네 문장의 논리로 압축한 실용서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의 강의 경험과 영화 현장의 실무를 바탕으로 서사를 만들어내는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서사의 원형을 탐구하여 그 과정을 4줄의 공식으로 전달하는 이 책은 소설을 쓸 때 옆에 놓고 봐야 하는 지도 그 자체이며, 길을 잃기 쉬운 글쓰기의 여정에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ebook으로 사서 실물책 사진이 없습니다.)



제가 뽑은 네 번째 최고의 작법서는 정진영의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입니다.

이 책은 등단이라는 제도적 관문을 거치지 않고, 관련 전공도 하지 않았으나 소설가가 된 저자의 실전적 기록입니다. 기자 출신으로서 작가가 되기 위해 밟아 온 무수한 실패와 비효율의 시간에 주목하여 삶의 굴곡을 어떻게 소설 쓰기의 동력으로 바꿔낼 것인가에 대한 삶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문학창작과, 국문학과, 영문학과, 어문학과 등 관련 학과 전공생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소설을 쓸 자격이 있나? 지금 이게 맞는 건가? 글쓰기와 전혀 관련 없던 내 그동안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정체성의 질문에 대해 정진영 작가는 자신 또한 전공이나 학벌 같은 형식적 요건 대신 경험과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끝까지 완성해 낼 수 있었던 비결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분노나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조차 소설 창작의 훌륭한 연료가 될 수 있음을 작가 본인의 장편소설 집필 과정을 통해 증명합니다. 실패를 자양분 삼아 문장을 길어 올리는 이 조언들은 고립된 창작의 시간 속에서 밝은 이정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뽑은 최악의 작법서를 소개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모두에게 최악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기, 책이 차지하는 책장의 2cm 남짓한 공간마저 아깝게 하고, 읽은 시간과 책을 산 돈을 아깝게한, 책 두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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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뽑은 최악의 작법서 1위는 에이미 존스의 『플롯』입니다.

이 책은 작법서를 단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완성한 글이 단 한 편도 없는 그야말로 쌩초보에게는 좋은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법서 몇 권을 읽었고 완성한 단편 소설이 한두 개 있는 그냥 초보에게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은 선원에게 '배를 움직이려면 돛을 올리고 노을 저으면 된다'라고 말해주는 조언과 같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만이천 원을 주고 한두 시간을 할애해 읽을 필요가 없는 초보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밑줄 칠 내용이나, 포스트잇을 붙여야 할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었으므로 흠 하나 없는 새 책 그 자체로 보존되었습니다. 만약 제 주변에 누군가가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이 가진 소설 작법의 지식이 0인 것 같으면 선물할 예정입니다.



그다음 제가 뽑은 최악의 작법서 2위는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의 『글쓰기의 최소원칙』입니다.

이 책은 아마 경희대 문창과에서 교재로 쓰기 위해 출판한 후에 학생들이 구매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제가 작법서 베스트셀러이길래 구매해 버린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오랬더니 삼각김밥을 종류별로 다 사 와서 차디찬 공원에서 먹는 것 같은 책입니다. 다 읽고 나면 술자리에서 교수님들에게 글쓰기에 대해 잔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찝찝함과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요?'라는 질문만 남습니다.


이 책은 책을 집필한 작가들(도정일, 김훈, 박원순, 최재천, 김동식, 김광일, 배병삼, 김수이, 민승기, 이문재, 이필렬, 차명직, 최태욱, 김영하)의 팬이라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작가 명단에 박원순과 최재천이 있을 때 걸렀어야 하는데 김훈과 김영하가 있어서 거르지 못한 제 잘못을 통탄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미로 속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조각해 나가는 중입니다. 지도가 부실하다고 해서, 혹은 걷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자신의 우주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정진역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실패는 곧 소설의 양분이 되고, 토비아스가 제시한 플롯은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 줄 테니까요.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건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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