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과 다름은 다르지만 질 낮음도 틀림과는 다르기에

어른들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고

by 정채린

책을 펼치는 행위는 누군가의 정성 어린 내면으로 초대받기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에세이를 읽을 때는 타인의 시선을 빌려 세상의 숨은 결을 만져보고 내면의 소란을 잠재워줄 다정한 지혜를 기대하곤 합니다. 작가의 사유가 빚어낸 단단한 문장들이 나의 흩어진 생각을 가지런히 정돈해 줄 때 나는 비로소 책과 나 사이에 깊은 연결을 느낍니다.


하지만 때때로 베스트셀러라며 읽게 되는 에세이 중에는 작가의 소중한 진심이 아직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채, 제목만 기가막히도록 훌륭하게 달아 세상에 나온 듯한 글이 있습니다.


정교한 논리의 뼈대를 세우거나, 적절한 은유를 이용해 사유를 자신의 일기장에나 쓰고 덮을 글을 다듬어 읽을만한 문학의 수준에 올려놓은 글이 아닌 글. 개인적인 감상의 나열에 머문 글. 일상의 편린들이 전혀 문학적인 여과를 거치지 못한 채 책이라는 그릇에 담긴 경우를 보게 됩니다.


작가의 내면이 투영된 솔직한 고백과, 문법적으로 정돈된 문장 같은 최소한의 조건만을 충족한 채 책으로 인쇄된 그것을 보면, 그것이 독자와의 공명을 고려한 정제된 언어로 치환되지 않음으로 인해 문학을 사랑하는 저에게 일종의 낯섦을 경험하게 합니다. AI의 발전으로 우리는 예전처럼 매끄럽지 못하고 툭툭 끊긴 문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딸깍 한 번으로 비문은 어느 정도 읽을만하게 고쳐집니다. 작가의 숨은 의도에 닿기 위해 예상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일상적인 에세이에서는 지향해야 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숨은 의도라고는 없는 얕은 접시물 같은 투명함이 담긴 문장도 책이라는 인쇄물에 담기에는 너무 납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놀랍게도 이런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글로 인해, 그리고 문해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쉬운 내용으로 인해 오히려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쉽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날것 그대로의 사유가 독자에게는 그 사유를 가지고 요리할 수 있는 흥미를 자극하는 통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율된 명문 앞에서 독자는 그저 감탄하는 수용자에 머물게 되지만, 이런 원시적 글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채우지 못한 빈칸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창조적 비판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익히지 않고 나온 생고기 같은 글을 읽으며 이 글을 구울지 삶을지 튀길지 고민하게 되는 그 묘한 불편감은, 마치 한국의 고기 식당에서 ‘익혀서 나와야 하는 스테이크가 날고기째로 접시에 담겨 나왔을 때’ 당황하는 외국인 관광객 같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제 이상향과 어떤 책의 이상향이 다르고 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넓은 세계관을 갖게 해 주기도 합니다.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논리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경험 또한 독자로서의 비평적 미각을 예민하게 벼려줍니다.

지난할 수 있으나 지루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사유의 노동을 거치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자해의 미학을 흠향할 때 비로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깊은 통찰까지도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넓은 지적 그릇을 갖추게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마주한, 익지 않은 떫은 감 같은 책이, 실은 나의 지적 미각을 깨우기 위해 찾아온 까다로운 스승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저는 이 책을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병에 걸린것처럼 보이는 작가의 자기 연민과, 세상에 대해 꿈도 희망도 없는 듯한 비관적 시선이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빼곡하게 담긴 이 책은, 저로 인해 역설적으로 세계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알려주었음에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