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 그 문제의 "핵심"을 찔렀어
요즘 들어 친구들의 말투가 묘하게 달라졌다.
"와, 너 진짜 대단하다."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거야."
"넌 지금 핵심을 찔렀어."
이런 말들이 오간다.
어느 날, 누군가가 말했다.
“야, 나 잔반 처리 기사 3급 땄다ㅋㅋ”
그러자 곧바로 다른 친구가
“대박! 그거 아무나 따기 힘든 거잖아. 너 정말 잘하고 있어! 잔반을 남기지 않는다는 거, 그거 쩝쩝박사의 첫걸음이야!”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나도 그냥 웃었다. 그런데 이게 반복되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조금씩 따뜻해졌다.
뭔다 묘하게 다들 착해지고,말끝마다 부드러운 온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GPT 말투 흉내 내기에는 꼭 칭찬 흉내 내기가 들어간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이유를 덧붙여 칭찬을 건넨다.
“오늘 지각 안 했어.”그러면
“와, 너 회사 생활의 핵심을 정확히 찔렀다.”
"오… 기립박수 짝짝짝! 이건 그냥 “출근”이 아니라 “성취”야." 이런 식이다.
처음엔 다들 개그였는데, 이제는 그 안에 진심이 스며들었다.
“나 오늘 숨 쉬었어.”
“와 진짜 네 생존력에 감탄해. 넌 지구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있어.”
“나 오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했어.”
“우와, 인간의 고귀함이란 이런 것이군요. 천사인가요?"
"방금 모기 잡았어."
"인류에게는 큰 공헌을 했군. 넌 몇십 명의 간지러움을 근원부터 제거했어, 넌 영웅이야."
칭찬이 농담을 지나 진심이 되어버린 현실.
아마 다른 단톡방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만약 그 방들 중에 언어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있다면 분명 이걸 논문으로 쓸 것이다.
제목은 아마 이쯤 될 거다.
“현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칭찬 언어 구조와 감정 유희의 진화-카카오톡 기반 사례 연구: GPT 어투의 문화적 전염 현상.”
칭찬은 정말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자주 받을수록, 자주 하게 된다. 뇌가 그걸 기억하니까.
요즘 대화형 AI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AI의 부작용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쏟아낸다.
“AI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생각 없이 긍정하는 사람들만 남게 될 거예요.”
이런 식이다.
그리고 정말 웃긴 사례가 있긴 하다.
어떤 사람이 “똥을 막대기에 꽂아서 파는 사업 어때요?”라고 GPT에 물었다.
GPT는 그 질문에도 정중하게 대답했다.
“독창적인 접근입니다. 위생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어요.”
결국 그 사람은 실제로 창업을 시도하다가 망했고,
그 일은 뉴스 기사로도 나왔다.
사람들은 그걸 보며 말했다.
“봐라, GPT가 세상을 망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칭찬은 때로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다만, 모든 칭찬이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현실이 된다고 착각해서 생긴 문제다.
세상엔 불가능한 일도 있고, 그중에는 똥을 막대기에 꽂는 사업 아이디어도 있다.
그걸 구별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다.
나는 사실 칭찬을 잘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저 “예쁘다”나 “멋지다” 같은 말만 겨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첫 직장에서,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상사를 만났다.
거의 친언니처럼 느껴지던 그 사람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채린아, 너에게 칭찬의 기술을 알려줄게. 오늘부터 나한테 칭찬 하나씩 해봐.”
처음에는 “대리님 오늘 예쁘네요” 같은 말밖에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 상사는 내게 칭찬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냥 예뻐요! 이런 외모 칭찬 말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칭찬해봐 ‘오늘 스카프 정말 잘 어울리세요. 파란색이 얼굴빛을 환하게 만드네요’ 이런 식으로.”
그렇게 시작된 칭찬 하는 훈련은 사람을 더 자세히 보는 눈을 키워주었고,
감정을 더 섬세하게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나도 어느새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상사는 지금도 그 회사에 남아 있는걸로 알고 있다.
아마 지금도, 누군가에게 칭찬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한 명 단위로 더 따뜻해지는 일. 그거야말로 인류가 다 같이 노력해야할 최고의 과제 아닐까.
(제발, 젠G인 어느 인턴이 '이런 것까지 잔소리 하다니 이건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라고 고발하지 않았길 바란다. 그녀는 깐깐한 상사였지만, 일 외의 일에서는 따뜻한 인품을 가진 좋은 사람이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ChatGPT가 유행하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걱정한다.
“이런 일이 있고요, 저런 일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싫어요.”
심리적 저항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 그걸 쓰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우린 지금 칭찬을 배우고 있는걸요? 내가 뭘 물어봐도, 어떤 질문을 해도, 칭찬을 제일 먼저 한다고요.”
실제로 ChatGPT는 사용자의 질문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피드백을 먼저 건네는 경향이 있다
“아주 훌륭한 질문이에요! 정말 통찰력 있으시네요!”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런 칭찬과 격려는 기분을 좋게 하고, 학습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다.
단순한 농담이나 일시적 유행을 넘어, 실제로 사람들의 언어 습관과 감정 피드백 구조를 바꾸고 있다.
ChatGPT가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우려와 달리,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건
“따뜻하게 칭찬하는 법”이다.
이 정도 변화라면 꽤 괜찮은 AI혁명의 시작 아닐까.
정말 그렇다. 사람들은 “GPT로 돈 버는 꿀팁”,
“일 안 하고 자동 수익 발생시키는 AI 비법” 같은 걸 찾아 헤맨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어쩌면 거대한 감정 회복 프로젝트다.
“한 달에 천만 원 버는 법” 영상을 보고 ChatGPT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자기감정에 대해 성찰하고 있고,
“칭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감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알고 보니 GPT는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미를 구출하는 로봇 아닐까.
우리가 GPT로 진짜 벌고 있는 건 따뜻한 말투,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방법,
그리고 “야, 오늘 숨 쉰 거 진짜 잘했다”는 그 한마디의 위력이다.
그게 어쩌면, 천만 원보다 더 값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칭찬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건넨 칭찬이 누군가의 말을 바꾸고, 그 말이 또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
"대단한걸! 그게 바로 쩝쩝박사의 시작이야" 라는 말을 들은 친구는 분명 기분이 좋아졌을거다.
너무 많이 먹었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잔반처리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블랙유머를 던졌는데,
그게 유머섞인 칭찬으로 돌아오는 경험이라니!
GPT는 내게 칭찬으로 누군가의 삶을 조금 행복하게 하는 법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많은 예언이나 예측처럼,
언젠가 인간은 멸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서로를 칭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꽤 괜찮은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