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단편소설의 외전 입니다.
불행하게도, 너는 마흔까지 살아 있다. 친구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도 너는 끝내 비겁하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채로 살아남았지.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마침내 그는 5층에서 뛰어내려 천국에 도달했다. 빗물에 번지던 피, 통증으로 떨려 감을 수 없던 눈꺼풀, 그리고 그 옆을 무심히 지나가던 개미와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꼿꼿이 서 있던 젖은 민들레까지 모두 기억한다 들었다. 그날 처음으로 너의 무섭도록 좋은 시력이 불편했다는 말까지. 그리고 떨어졌던 그 친구가 나흘간 고통 속에 있다가 죽었다고도 들었다.
너에게 들은바, 그가 몸을 던질 일은 아니었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혼나고 끝날 일이었다. 녀석이 모범생이었던 너와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너 또한 알고 있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던 외로움을.
그래, 너는 십 년 뒤에 또 보았다고 했다. 몸이 반 접힌 채 떨고 있던 그녀를. 두 번째 경험이어서 익숙한 자신이 치욕스러웠다고 말하며 내 눈을 피하던 너의 빨개진 입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왜 하필 그때의 네가 비로소 성숙했다고 느꼈을까. 너의 치욕이 나의 수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일찍 떠난 게 더 나았을까. 여기는 지옥이니 말이다. 그들의 섣부른 결정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그들이 너의 삶을 축하하는 소리는 못 들은 거로 하겠다. 그곳에는 그들의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여긴 너의 자리가 없다. 그들은 초대받은 죽음으로 도달했고, 너는 초대받지 못한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위조한 초대장을 쥔 채 불안에 떨고 있다.
나 또한 위조한 초대장을 들고 있다. 언제 들킬지 몰라 두려움에 떨면서, 아무도 나에게 초대장을 검사하지 않아도 "이 자리는 내 자리고요, 전 누군가가 원해서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외칠 준비를 하면서. 그건 필요 없는 공격이며 슬픈 방어다. 이제는 누구도 초대하지 않은 자리에 가는 일이 매우 익숙하다. 너무 익숙해서 내가 유령의 전구체인 것을 까먹을 정도다.
다행히도 세계에는 가끔 빈자리가 있다. 그들을 원하는 곳이 너무 많은 나머지 다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워둔 잉여자리. 그 자리에 억지로 끼어들어 가는 기술이 생겼다. 놀랍게도, 이건 내가 동경하던 방식이다. 본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아 스며드는 사람이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거기 있는 사람들, 그 자연스러움은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어디를 가던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들에게 초대장 따위는 필요 없다. 초대장 없이 도착한 아무 곳에서나 자신의 초대장을 만들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들을 동경한다. 사랑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 거절을 지레짐작하지 않는 사람들. 손을 뻗으면 손을 잡아주고 마음을 던지면 마음을 받아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 거절당하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공격당하지 않을 거라는 안전감.
나는 왜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죽고 싶은 하루를 또 넘기고 있을까. 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흘러가는 시간 어딘가에 손을 뻗어보지만, 그 손끝엔 언제나 체념이 한 겹 더 쌓인다. 누군가 내게 “마음이 무겁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마음의 질량이 커질수록 관성도 커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죽음보다는 삶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무거워진 마음은 삶에 대한 관성을 키워, 나를 이곳에 붙들어 둔다. 인간은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없고, 살고 싶다고 무조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이라는 건 인간의 의지와는 별개니까.
- 가슴에 박힌 총알을 빼내던 중 지선을 생각하며, 당신의 친구 G가.
창작자끼리는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이놈들은 자기 상처까지 모아 작품으로 팔아먹지.” 그런데 자조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파는 건 상처만은 아니다. 사랑, 기쁨, 깨달음, 성취, 행복, 우애, 좌절, 슬픔, 고통, 미움, 질투, 추함, 은밀한 내면의 환상까지 모든 것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