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에버랜드 에버랜드~
첫 번째로 쓰고 싶었던 고백글
일상을 보내다 보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에버랜드 T 익스프레스가 20m 상공에서 멈췄다는 뉴스를 들었다.
보통 이런 종류의 뉴스(케이블카가 멈췄다거나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등)의 소식을 듣게 되면 봉변을 당한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을텐데... 어우’
뉴스를 듣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진행자가 놀이기구의 사고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며 에버랜드를 다시 언급했을 때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에버랜드 에버랜드 에버랜드~”
뒤로 갈수록 반음씩 높아지던 여성의 목소리는 중학교 3학년 교실로 나를 이끌었다.
칠판은 뭉개지고 아이들의 수다는 짐승의 울음처럼 기괴했다.
한창 판타지 소설과 만화책에 빠져 마나와 기를 움직여보겠답시고 손바닥에 힘을 주며 끙끙거릴 때가 있었다.
남들 모르게 세계와 운명을 내 멋대로 저울질 하며 공상에 빠져 있으면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그녀가 나를 보며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추억 속의 그는는 인상은 희미하고 교복은 단정했다. 변함없는 헤어스타일과 교복은 그녀의 어머니가 준비한 전투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면 그녀는 위협하듯 턱을 치켜올리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쪽쪽”
그것은 입맞춤을 표현하는 소리보다는 강아지를 부르는 소리에 가까웠다. 사람을 놀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말버릇이자 추임새에 가까웠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은 내 이름과 쪽쪽, 에버랜드 세 단어가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경증의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특수반으로 보내기에는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비장애인 학생 사이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이 아니었을까.
‘장애인’이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녀의 특이한 행동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그렇게 보통과 보통 아닌 것을 나누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다. 중학생의 내가 했던 건 단 하나.
“쪽쪽”
그녀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했을 뿐이다.
내가 반응을 해주면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에버랜드 에버랜드 에버랜드~”
표정을 알 수 없는 나도 따라서 말한다.
“에버랜드 에버랜드 에버랜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특이한 말과 행동이 재미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친해지고 싶었던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걸까.
확실한 건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그녀를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청각장애인이 된 지금의 나에겐 어설픈 동정심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불편함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알기에 그것 하나만은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된 내가 이제와서 그녀에게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했을 때 친구들의 눈치가 보여 어색하게 웃기만 했던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머리를 잡아당기며 놀고 있는 남학생을 향해 얼굴을 찡그리던 그녀를 못 본 척 하고 지나가버렸던 나에게 후회할 자격이 있을까.
죗값을 받어서 내가 장애인이 된 거라는 엉뚱한 화풀이를 할 생각도 없다.
그녀와 나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놀이기구에 갇힌건지 케이블카에 갇힌건지, 아니면 이물질이 끼어서인지 관리자의 부주의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먼저 사고가 난건지 나중에 사고가 일어난건지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세상과 단절된 건 똑같다.
그저 지금의 내가 그녀를 떠올렸던 것처럼 그녀도 나라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맑고 순수했던 에버래드~의 멜로디처럼 즐거움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