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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상 Oct 02. 2022

다시 읽어보니 동화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어른이 되어 읽은 미운오리새끼 3가지 포인트

모처럼 3일의 휴일을 얻은 김에  이야기가 아닌 ‘동화 리뷰 써볼까 한다.

동화의 제목은 바로 ‘미운오리새끼

1997, 2018년에 출간된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보면서 어린시절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포인트 3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안데르센의  작품은 소설이었다

작가 소개를 훑어보면서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창작활동을 동화가 아닌 소설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잡학 정도로 동화에 관한 소재로 얘기가 나왔을  “그거 알아? 안데르센 소설도 썼다는 ?” 하면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에 좋은 소재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소설의 제목은 ‘즉흥시인

뭐랄까 제목에  시인이 들어갔는지 소설 내용이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2. 동화 제목이 ‘미운오리새끼에서 ‘못생긴새끼오리 바뀐 이유

2018 전집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동화의 제목이 바뀌었다는 것이.

번역의 문제가 있었던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는  수가 없다.

추측의 영역에서 생각해보면 먼저 새끼의 위치가 바뀐  어감의 차이인  싶다.

비속어처럼 느껴질  있는 새끼를 중간에 배치하여 욕처럼 들리지 않도록 바꾼 것은 아닐까.

짐승의 새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양의 강세 때문에 옮겼다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니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기라고 순화해서 부르는  개인적으로 새끼라는  자체를 나쁘다고 결정짓는  같아 과잉대응 하는  아닐까 싶다. 호형호제의 느낌이랄까.

미운과 못생긴의 차이에 대해서는 원인을  명확하게 제목에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미운 존재가 아니라 못생겼기 때문에 새끼 오리는 미움을 받는 거니까.

못생겼기에,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 새끼 오리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못생긴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을까.

이미 고착되어 버린 ‘미운오리새끼  익숙하지만 ‘못생긴새끼오리 좋은 제목 같다.

3.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교훈

교훈에 대해 얘기하기 앞서 간단하게  동화의 줄거리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다른 오리알보다 커다란 오리알에서 태어난 미오. 크고 못생긴 외모에 타조에게 맞고 다른 오리에게 목을 물리고 아이게게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농장을 뛰쳐 날아간다.(뜬금없는 복선)
들오리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냥개에게 사냥감조차 여겨지지 못해서 간신히 살아남는 고난이 계속된다.
호수에 얼어죽을 뻔하고 작가도 차마  적지 못할 정도의 고생이 이어진 끝에 백조 무리에서 자신이 백조임을 깨닫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교훈이라 한다면 괴롭힘과 시련을 극복하면 백조처럼 훌륭한 존재가   있다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화를 이름 모를 조류학자가 읽었다고 가정해보자.

 조류학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백조 새끼가 오리들로부터 공격당하는  당연한거지. 오리들은 그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킨 것에 지나지 않아

인종의 우열이 있다고 믿는 백인이라면 어떨까.

역시 흰색은 우월해 노란 , 까만 것보다 우아하고 아름답지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아르바이트생이라면?

백조 새끼가  자라서 백조가  거잖아.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백조가   없어

동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화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비약일 수도 있다.

하고 싶었던 말은 동화를 다시 읽어보니 하나의 교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괴롭힘에 도망치지 않고 농장 안에서 차별에 맞서며 오리들과 공존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독후감을 제출했다면 ‘ 잘했어요도장을 10 받았을  같은데 이제와서 깨닫다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동화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스토리 중반부에  태어난 기러기  마리가 자기들과 같이 암컷 기러기를 찾자고 꼬시는 내용이 나온다.

종족번식의 욕구에 사로잡혀 짝짓기라는 부러운 아니, 괘씸한 행위를 하려는 녀석들에게 천벌이 떨어진다.

-탕탕

원샷원킬의 사냥꾼에게 총을 맞아 피를 흘리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리의 기러기를 떠올리며 나는 생각했다.

정의는 살아 있구나



역시 나는 때묻지 않은 어른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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