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클라이밍을 하게 되었다
작년 4월쯤이었을까.
“클라이밍 해보지 않을래요?”
상담이라고 해야 할지 구직 문의라고 해야 할지
인턴 자리를 구해줄 수 있을 거라던 시청각장애인 센터에서 온 연락이었다.
주소 이전과 관련된 문제로 인턴 자리를 확신할 수 없는 와중에 걸려 온 전화이기도 했다.
클라이밍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관심은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야외활동보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었기에 신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안전에 유의한다고 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인 내가 어떻게 암벽등반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불가능한 도전이자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신청자가 부족하다는 얘기와 함께 해온 권유를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인턴 자리에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을까, 거절하면 취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직업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나에게 있어 이 혹시 모를 불안은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주말임에도 회사 산악회에 끌려가야 하는 직장인의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졸지에 클라이밍을 하게 되었다.
첫날부터 실내 클라이밍 장소가 야외 아파트 단지 내 클라이밍 장소로 바뀐 것부터 불안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신발을 갈아신고 로프를 매달 수 있는 기저귀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나서 암벽 앞에 섰다.
홀드(돌) 위에 발을 올려놓고 두 손에 힘을 준 채 보이지 않는 홀드에 발을 걸쳤다.
같은 과정을 두 번 반복하자 팔에 힘이 없었다.
강사가 방향을 얘기해주지만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으며 허공을 짚는다는 기분이 들 때면 두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가서 힘이 빠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낑낑거리다 팔에 힘이 없어 포기하고 밧줄을 잡은 채 내려갔다.
높이를 확인해 보니 겨우 5분의 1 정도만 올라간 것이었다.
두 번째 시간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강사는 홀드에 발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자세를 상세히 알려줬으나 홀드를 잡은 두 손은 여전히 힘에 부치고 발 디딜 홀드는 찾기 어려웠다.
집에 있는 아령을 들고 악력을 키워보려 했지만 단시간으로 내 몸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동을 도와주시는 활동지원사의 조언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괜스레 짜증이 날 정도로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일정이 있어 세 번째 시은은 쉬었다.
클라이밍을 빠질 수 있게 되어서 진심으로 안도했다.
운동은 멈추지 않았지만 반쯤 포기한 상태에 가까웠다.
끝까지 올라갈 자신은 없고 의욕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애초에 의욕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네 번째 클라이밍 시간이 다가왔다.
우중충하던 하늘이 내 기분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클라이밍 장소에 도착했을 즈음엔 빗방울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취소되는 건 아니까 하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나는 어느새 암벽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손에 너무 힘을 주지 말고 벽에 최대한 가까이 달라붙어서 올라가 봅시다.”
로프가 있어 발을 헛디뎌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머릿속에서는 이해하고 있지만 저절로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두 번재 시간과 비슷한 높이에서 손에 힘이 떨어지기 시육했다.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건가’
포기하고 로프에 몸을 실으려는 순간 옆에서 강사의 목소리가 나를 붙들었다.
“포기하지 말고 오른쪽 1시 방향에 있는 홀드 잡으시고...”
강사의 지시대로 홀드를 잡고 상체를 들어올렸다.
“11시 방향에! 발 올려놓고! 좋아요”
위치를 가늠하여 발을 올려놓으면 그곳에는 발을 디딜 홀드가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좋아요 이제 12시 방향의 넓은 홀드를 두 손으로 잡으시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지탘ᆼ해주는 로프에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올라갔다.
얼마나 남은걸까.
옆에서 큰소리치며 방향을 알려주는 강사의 소리를 듣고자 귀를 기울였을 때 강사가 내 팔을 잡고 흔드는 것이 아닌가.
‘아, 끝났구나’
손을 흔들자 박수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숨은 가빠오고 얼떨떨하기도 하지만 나는 정상에 올라온 것이다.
클라이밍이 끝나고 외향적으로 성격이 바뀌거나 운동에 취미를 붙였다는 등의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레짐작으로 포기하지 않고 일단 시도해본 다음에 포기한다는 정도일까.
클라이밍, 생각보다 해볼 만한 스포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