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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상 Oct 08. 2022

혼자서 걷는 것 VS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

활동지원사 그리고 선택지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때였다.

친척 어른의 소개로 어머니와 함께 맹학교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정보도 듣고 직업에 대해서도 모색하는 그런 자리였다.

“스스로 독립보행을 할 줄 알아야죠.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니까요.”

식사 자리에서 맹학교 관계자가 한 말이었다.

맹학교에서 흰지팡이 사용을 통한 독립보행, 점자, 안마와 같은 기술을 가르치며 시각장애인의 자립에 힘써 온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했다.

수긍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 수긍하지 않더라도 흘려버렸을 말임에도 나는 그 말에 맞장구치지 못했다.

그 말이 과장되어서는 아니었다.

점자블록이 생기기 전에도, 조선시대에도, 문명이 태어나기 전에도 시각장애인은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팡이를 짚고 땅을 두드리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투쟁에 가까운 몸부림을 부정하는 짓을 독립보행에 도전해보지도 못한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스타트 라인에 서보지도 못한 채 관객의 입장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종류의 열등감이었다면 나는 그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기를 부리는 몸만 어른인 어린아이일 것이다.

제 풀에 지쳐서 현실에 순응하고 독립보행을 배우는 재활의 동기부여로 삼으면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의문 모를 반발심은 수만은 실패로 얼룩지고 시체들이 쌓여 비좁아진 길을 유일한 성공의 길처럼 포장하여 그 틈바구니에 아이들을 밀어넣는 어른에게 저항하는 것과 닮아 있었다.

자립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그 말에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권위가 숨어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되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에 다니고 나서 알게 된 제도가 있었다.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이었다.

장애 정도에 따라 시간을 받고 할당된 시간 동안 활동지원사가 이동, 가사 등의 생활을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시각장애인은 활동지원사와 함께 다니며 혼자 다닐 수 없는 직장을 다니고, 모임과 여가활동을 즐기고, 식사와 청소와 같은 생활의 도움을 받는다.

활동지원사가 만능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건 자유롭지 못하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맹학교 관계자에게 있어 활동지원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자립에 성공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편리한 제도를 활용하는 것 또한 자립의 하나의 형태가 아닐까.

독립보행을 하는 시각장애인은 자립에 성공한 훌륭한 사람이고 활동지원사를 쓰는 시각장애인은 자립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은 보행을 배워서 스스로 걸어가면 된다.

용기 있는 행동이자 의지가 강한 훌륭한 선택이다.

자기부담금을 내면서 활동지원사에게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움을 받는다면 활동지원사라는 좋은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편리함에 기댄 도태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쩌면 이 생각은 해낼 수 없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예외 없이 선택지가 하나만 있는 길만 있다면 주저앉아서 하나뿐인 선택지를 노려보는 것 정도는 내 의지로 하고 싶다.

어른이 되어 실패를 반복하면서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생기고 같은 절차를 내 자식만은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른은 아이에게 강요를 하고 부담을 짊어지운다.

그것은 공부이기도 하고,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이기도 하며, 현실과 하협하면서 끝까지 붙잡지 못한 무언가이기도 할 것이다.

공통적으로 성공이라 생각하는 길은 이미 지나버린 길이자 교집합인 레드오션이다.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죠. 그렇지만 활동지원사라는 제도도 있으니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맹학교 관계자가 이런식으로 얘기를 했다면 나는 감사한 조언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지금 나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출퇴근을 하고 있다.

언젠가 독립보행을 하고 싶은 순간이 오거나 활동지원사가 아닌 새로운 지원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내 상황에 맞게 선택지를 고르면 된다.

경쟁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스스로의 의지로 보다 많은 선택지를 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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