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그리고 소통
진동은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진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에게 촉감으로 전해지는 진동은 훌륭한 신호이자 의사 전달 도구다.
진동을 감지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가장 먼저 스마트폰의 진동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스마트폰의 진동으로 알람이 왔음을, 전화가 왔음을 알 수 있다.
한 번 울리면 문자와 메시지 같은 알람이 왔다는 것이고, 반복해서 울리면 전화가 왔다는 것을 횟수의 차이로 알 수 있다.
이것은 비장애인이든 시청각장애인이든 동일하게 느끼고 인지하는 공통분모라고 생각한다.
시청각센터가 개발한 의사소통 앱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비장애인이 음성으로 말하면 그 내용이 점자로 출력되고 시청각장애인이 점자를 입력하면 비장애인이 화면으로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비장애인이 음성으로 말할 때 시작과 끝을 시청각장애인은 진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진동이 한 번 울리면 시작했구나, 두 번 울리면 끝났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진동이라는 촉각 신호를 왜 진동음이라 말하는지 알 것도 같다.
시청각장애인에게 있어 진동은 소리와도 같다.
진동음의 세기와 횟수에 따라 보다 많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서 우리는 진동벨을 통해 주문한 음료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감정과 신체 변화에 따라서도 진동을 느낄 때가 있다.
“으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
추워진 날씨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합격! 합격이라니 믿을 수 없어”
너무나 벅찬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며
“내가 반드시 복수하고 말 거야. 두고 봐.”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진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기에 그 반응의 결과로서 우리는 진동한다.
진동이 모여 지진이 되기도 하는데 자연적인 지진이 아니라 인공적인 흔들림에 가깝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에 승리하자 같은 조였던 멕시코 국민이 환호하며 뛰었던 것이 인공적인 지진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작은 진동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인간의 광기를 엿볼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진동에는 보내고자 하는 의지가 반응하여 생긴다.
진동을 보내는 주체가 사람이 아닌 시스템인 경우가 많다.
알람 설정을 해놓으면 직접적으로 알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패턴화된 구조 안에서 메시지가 전달되기도 한다.
패턴화된 메시지가 사람이 보낸 메시지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면 섬뜩함에 몸이 부르르 떨리곤 한다.
요즘 내가 기쁘게 반응하는 알람은 브런치의 라이킷 알람이다.
누군가가 내 글을 계속 읽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퇴근 후 잠들고 싶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글을 쓰게 만든다.
진동이 울리면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설레고 광고 알람이 뜨면 실망한다.
라이킷이라는 반응을 통해 진동으로 전해지면 받아들이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소통하고 있구나.’
말로 표현하거나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나는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살아 온 시청각장애인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반응하며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