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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Mar 09. 2020

노 페널티 에어리어(1)

실패가 두려운 나에게

안전 실패 구역

서핑을 하면서 내 무릎과 팔꿈치는 얼룩 하나 없이 말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 박세현


원래는 잘 다치는 편이었다. 늘 무엇과 부딪히고, 자빠졌다. 그때마다 무릎과 팔꿈치 둘 중 하나에는 피가 났다. 달리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하는 편이기도 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도 뛰어다녔다. 뛰지 말라고 적혀 있는 학교 복도에서 뛰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운동장에서 뛰는 것보다 속도감이 났기 때문이다. 뛰다가 벽과 기둥과 문과 친구와 급식대와 정면충돌하여 기절하고 까지고 호흡 곤란한 상태가 되어 누워있기도 했다. 내 뜀박질을 견디지 못한 삼선 슬리퍼는 더러워지기 전에 중간부터 찢어지기 일수였다. 걸어 다녔으면 넘어지지 않았을 일을 뛰어다녔기 때문에 넘어졌고, 걸어 다녔다면 손바닥에 흙이 조금 묻고 말았을 일이 찢어지고 깨졌고 피가 철철 나야 끝났다. 그래서 무릎과 팔꿈치에는 늘 피딱지와 흉터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옛날 일 같았다. 최근엔, 생각해봐도 넘어진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팔꿈치나 무릎에 피가 흐를 정도로 다친 기억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서핑을 하다가 그렇게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팔꿈치와 무릎이, 한편으론 너무 지금의 내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실패하는 게 너무 두려졌고,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편이었고, 지금의 매끈한 내 팔꿈치와 무릎에 그 모습이 비쳐 보였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 같아 보이기도 했다.


파도는 자주 내 마음을 보여줬다. 서핑 4일 차, 내 옆에 사람들은 곧잘 파도에 올라탔지만 나는 전혀 파도를 타지 못했다. 파도는 나를 자꾸 지나쳐갔다. 패들링이 잘못일까, 왜일까, 뭐일까 생각하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패들링만 하다가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밖에 나와 멍하니 해변에서 바다를 보다가 오늘은 노즈 다이빙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번에 서핑을 할 때, 몇 차례 노즈 다이브+통돌이를 경험하며 바다의 짠맛을 제대로 경험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드의 뒤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물러섰던 모양이었다, 어떤 파도가 와도 얼굴부터 처박히는 일은 생기지 않을 만큼.


머리카락도 거의 말라있었다. 파도가 높지 않은 날이었고, 나는 잔뜩 겁먹어 뒷걸음만 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두렵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알겠어..."

파도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를 위로 살짝 들었다가 그대로 놓았을 뿐, 결국 나는 제자리였다. 나는 매끈한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한 올 한 올 따로 놀만큼 말라버린 머리를 하고서 왠지 모르게 좀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 바다엔 여전히 서핑하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파도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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