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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Jun 07. 2020

위로도 응원도 아니겠지만

김연수, 소설가의 일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조금만 힘들어도 걷는다. 줄곧 힘들면 줄곧 걷는다. 그렇게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십오 분이 지나면,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한다. 돌아올 때는 걷든 뛰든 내 마음대로 한다.
그리고 정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달렸다. 처음에는 거의 걸었으니까. 일단 십오 분만 밖에서 보낸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자 이전에 이를 악물고 달렸던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는 그 어떤 날에도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달리는 사람이 됐다.

_김연수, 『소설가의 일』


내 즐겨찾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싸이월드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 5년 전에 내가 남긴 텍스트였다. 텍스트는 2015년 3월에 적혀 있었다. 그땐 봄이었지만 봄 같은 마음이 나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으면 안개가 자주 끼는 대학교 안을 산책했다. 노래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주로 팟캐스트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걷다가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면 산책을 마쳤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잠을 잤다.


위로도 응원도 안 되는 말이겠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했노라는 말이 과거의 내게는 소중했나 보다. 안 까먹으려고 품고 있었나 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이를 악물고 달리는 사람도, 매일 달리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저런 것을 품고 새벽에 산책을 다니는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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