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갈릴레오는 다크호스들을 발견했다

물리학은 내가 다크호스가 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by 서규원

나는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했었다. 집에는 다른 많은 책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왜?’ 시리즈의 과학책들이 있었다. 나는 자연에 특히 관심이 많아서 항상 근처의 산과 풀밭으로 모험을 하곤 했었다. 초등학교 때 특별활동 반으로 ‘자연반’에 들어갔고 거기서 과학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우리 집에 있던 세계 위인전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 중 하나는 곤충학자 파브르였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라고 해도 표준화된 학교성적 시스템에서는 흥미를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시험을 통해 점수를 얻어야 하는 고등학교의 과학과목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네 과목 중에서 생물과목만 흥미롭게 들었을 뿐이었다. 특히 물리학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꺼리는 마음이 있었다. 물리학은 내가 관심이 많았던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계산’ 과정을 참아내지 못하고 멀리했었다. 대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선택과목인 생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나는 미생물을 연구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것은 물리학이다.



대학에서 미생물을 공부하면서 존경했던 과학자는 미생물학의 아버지 루이스 파스퇴르였지만 지금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과학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보다 이제는 전자기학을 연구한 존 암브로스 플레밍을 더 흥미롭게 보고 있다. 학창시절에 시달렸던 성적의 부담에서 자유케 된 덕분인지 그 때는 보기도 싫었던 수식들이 이제는 무척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숫자와 기호만으로 이루어진 수식들을 보면서 묘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나 스스로 물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돌이켜보면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시간만 물리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내 생각에 내가 좀 더 빨리 내 안에 있는 다른 흥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표준화되어 있는 교육환경 때문인 것 같다.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가 공저한 책 [다크호스]에서는 교육이 표준화된 배경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표준화는 우리 사회를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사회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었다. 특히 산업분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들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큰 혜택을 입었다. 어떤 제품에 대한 표준화된 규격이 잘 지켜진다면 특히 그 제품이 인간의 건강과 안전에 중요한 것이라면 특정 기준을 만족시키는 제품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야 하고 이런 표준화 방식은 인간의 삶을 매우 크게 발전시켰다. 국가 간의 무역에서도 이런 규정이 있어야만 했고, 거래되는 모든 제품들은 이 기준을 근거로 판단되었다. 여기에는 특출난 개성은 해악이 되었다. 그게 비단 표준보다 더 뛰어난 것이라 해도 획일화된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제거되어야만 했다.



문제는 표준화 방식이 제조업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교육 분야에 침투하였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성공 기준도 표준화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성공을 이야기할 때 ‘똑같은 일을 남보다 더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한 가지 경로를 가도록 채찍질하고 버티라고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물론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을 통해 주목할 만한 성과들도 있었다. 특히 독재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와 같이 획일적인 지배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나왔다. 소련은 과거에 스포츠, 과학 등의 많은 분야에서 늘 미국을 압도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국가들도 이런 표준화된 방법들을 자발적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표준화의 시대에 살아왔었다. 많은 학자들이 개개인성을 중요시 생각하며 표준화 방식을 비판했지만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마치 민주주의가 완벽한 정치이념은 아니지만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개개인성을 모두 보장해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래도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표준화 방식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저자는 표준화 방식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기는 것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모두가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갖고 살았고, 사람들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을 바라보며 당연히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다. 하늘의 천체의 움직임으로 세상을 점쳤던 점성술이 발전했던 과거에는 하늘의 모든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였다. 단,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들만 빼고 말이다. 당연히 태양계에 지구와 함께 속한 다른 행성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지 않는다. 과거의 천문학자들은 이렇게 이상하게 운동하는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조작을 가한 것인데, 사람들이 듣기에 그래도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당시의 지구중심의 세계관은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고질적인 고정관념이 바뀌려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역사상 최초로 지구중심 우주관을 벗어나 태양중심설을 이야기했지만 그는 설득력있는 글을 잘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주장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진지하게 생각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해 세상이 뒤집혔다. 그는 스스로 제작한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를 도는 네 개의 위성을 관찰하였다. 여태껏 모든 천체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던 세계관이 깨지고 다른 천체들을 거느린 지구와 같은 별이 또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지구 중심의 우주관처럼 사람들에게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인생의 성공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생각하며 오직 한 가지 경로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갈릴레오의 위성들처럼 표준화 방식을 깨트릴 명백한 증거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다크호스들이다. 영국의 소설에서 유래한 ‘다크호스’라는 용어는 경주에서 이길 것으로 전혀 예상되지 않은 말이 깜짝 우승을 하는 장면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믿는 표준화된 경로를 거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로를 통해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의미한다. 다크호스들은 처음부터 독자적인 길을 걸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도 표준화된 방식의 길을 걸었고, 버텨보려 했지만 자신이 충족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깨우침을 얻어 터닝 포인트를 맞은 사람들이다. 다크호스들의 성공 경로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들 각자의 개개인성에 따라 그들은 자기만의 최적화된 경로를 개척했고, 자신만의 전략을 수행한 것이다.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자기 충족감을 추구했다는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계속해서 구불구불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목적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의 원리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나 자신의 자기충족감을 위한 것이다. 물리학은 내가 표준화된 경로를 벗어나 다크호스가 되고 싶은 욕구를 살아나게 하는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Photo by Evgeni Tcherkasski on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