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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May 21. 2020

애정을 담은 마지막 에세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때로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경험을 기준으로 고르는 것인데, 이런 방식의 책 고르기는 매우 주관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본다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나는 한 명의 작가에게 마음을 주면 그가 쓴 책들을 다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책들 중 일부는 사람들에게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이미 그 작가의 팬이 되었기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으로 그 책을 대하게 된다. 그렇다고 분별력없이 그 작가의 모든 생각과 글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그의 생각을 존중하며 너무 부정적이지는 않은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불편한 경험들이 쌓일수록 기존의 생각에 변화가 생길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첫 인상이 주는 힘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쇄가 되는 것 같다.



  영국의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올리버 색스의 책은 내가 고민없이 고를 수 있는 책들 중 하나이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이자 훌륭한 학자의 면모를 그의 책을 통해 보여 주는데, 나는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한 사람의 고귀한 존재들로서 자신의 환자들을 그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나 그가 진료하고 돌보았던 환자들은 뇌에 생긴 문제로 인해 특이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가 편견없이 환자들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했다는 것을 그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연구대상으로 환자들을 본 것이 아니고 따뜻한 관심과 호의로 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80대에 암투병을 하면서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고 그가 평생 사랑하며 추구했던 것들을 글로 작성했는데, 그 책이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며 글을 썼고, 자신이 만났던 환자들을 떠올리며 미처 다른 책에는 적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이 세상과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글들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올리버 색스라는 한 사람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알 수가 있다. 그는 그의 전문분야인 신경과학에 대한 방대한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그가 좋아했던 화학과 수영, 독서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책을 읽으며 나는 적어도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는 남기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밝혔는데, 그는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한 소망보다 그가 살았던 삶에 대한 만족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인간의 삶은 계속될 것이기에 지금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대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그의 마지막 책에서 그가 살면서 사랑하고 추구했던 것들,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동경하고 닮고 싶은 글쓰기의 전형적인 예를 올리버 색스의 글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일상적이면서 주관적인 자신의 경험과 사례들을 전문 지식과 함께 나타내는 글이다. 그러면서 그 전문성 넘치는 지식들이 너무 무미건조하다거나 딱딱하지 않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는 글을 좋아한다. 그는 평생을 글을 썼고, 독서를 즐긴 사람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면도 보여주는데, 그는 더이상 큰 글자판의 책이 출간되지 않자 늘 확대경을 갖고 독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전자책을 활용하여 독서를 할 때도 고집스럽게 확대경을 이용한 종이책을 애용하였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루틴에 따라 독서를 하였다. 



  그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평생 자신을 발전시키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책에서도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그 잠재력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뇌의 가소성을 주장하였고, 사람은 언제든 변화될 수 있으며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마음이 아마도 환자들을 치료하고자 하는 열정과 열망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을 통해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시선을 조금은 갖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고 :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2019),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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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eremy Bisho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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