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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May 01. 2019

내가 읽는 게 읽는 게 아니야

소크라테스, 그 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그의 예측대로 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살던 시기에는 글을 쓰는 행위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말을 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고 글로 적음으로써 생각을 저장하는 것은 더이상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소크라테스는 글을 쓰는 것이 쉬워지면 쉬워질수록 생각을 더 자주 저장할 수 있게 되고 기억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므로 사람들은 더 어리석어 질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기술의 발달은 우려 섞인 전망을 야기해 왔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했듯 글을 쓰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게 할 거라고 부정적인 전망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왔다 .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종이가 발명되었을 때 글을 쓰는 것은 더욱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고 그 동안은 아무나 글을 써서 보관할 수 없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띄어 쓰기와 같은 새로운 규칙들이 잘 읽기 위한 목적으로 추가되었고, 씌여진 글을 읽는 것은 더욱 보편화 되었다. 글쓰기는 사람들을 바꿔놓았다. 기존의 듣는 지식에서 읽는 지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의 발전은 소리내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는 새로운 행동들이 탄생할 수 있게 하였다.


글쓰기가 쉬워지면서 사람들은 더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쓰지 않았다면 잃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기록하여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종이를 두루마리의 형태가 아닌 낱장의 종이들을 실로 꿰어 만든 초창기 방식의 책이 만들어 지면서 정보를 찾기도 훨씬 용이해졌다. 지식의 전달은 구전 방식에서 기록의 방식으로 바뀌면서 일대의 혁명을 맞이하였고 책의 발명으로 또 한번 혁명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기록이 활성화되면서 필사를 전담하는 직업이 유행이었으며 훨씬 다양하고 많은 지식들이 생산되었다. 이 지식에는 공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사적이고 비밀스런 내용도 많아졌다. 기술의 발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록은 필사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활자로도 보급되었는데 이로 인해 출판업이 탄생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책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도서관의 발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인간의 읽고 쓰는 능력은 소크라테스의 우려와는 달리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지는 않았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많이 변화시켰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이 기술을 적절하게 통제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들은 계속 기술을 발달시키고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시간이 더 흘러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책의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사람들은 활자로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는 것보다 스크린을 통해 보는 글이 더 익숙해졌다. 그런데 스크린에 나타나는 하이퍼 텍스트는 많은 링크를 포함하고 있어서 온전히 글을 읽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화면에 나타나는 각종 그림과 영상들은 클릭 한번으로 새로운 페이지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화면을 통해 글을 읽을 때 우리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지며 집중을 해도 오랜 시간동안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 진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기술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


하이퍼 텍스트와 디지털 콘텐츠를 통한 정보 습득은 일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삶을 편하고 흥미롭게 하였지만 독서를 통한 사색과 깊은 통찰은 점점 더 하기 힘든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스크린에 나타낸 글자들은 수많은 링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진하게 표시된 글자가 있는 것 만으로도 읽는 사람의 주의를 흐트러지게 만든다. 그리고 읽는 중간에 링크를 통해 새로운 정보의 세계로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읽는 능력을 저해하는 독이 되고 말았다. 또한 디지털 컨텐츠들을 접하는 사람들은 긴 글보다는 간결하고, 결론적이며, 요약해서 보여주는 컨텐츠들을 선호하다보니 사람들의 뇌는 점점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들만을 받아들이기 선호하는 뇌로 바뀌었고 조용히 사색하며 깊이 생각에 잠기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생긴 현상이 웹에 나타난 긴 글을 'F'자 혹은 'ㅋ'자 형태로 읽는 습관이 생긴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긴 글을 읽는데 익숙하지가 않게 변했다.


그러면 이미 인간의 삶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버린 인터넷 세상은 악한 것으로 봐야 할까.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독서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지만, 다시 노력함으로써 독서하는 뇌로 바뀔 수가 있다. 그러려면 일정시간 책을 읽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하고 잠시라도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상은 이미 변했고, 기술은 인간이 만들어 냈지만 그 기술로 인해 사람의 삶의 모습은 변하였으며, 현재 인간이 기술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당시에 예측했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글쓰기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인터넷의 확산과 디지털 콘텐츠의 영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저)' 에서 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훈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때에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수도 있는 것에 더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한 바와 같이 인터넷 세상과 디지털 컨텐츠들이 주는 영광을 누렸지만 그로 인해 독서와 사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 하이퍼 텍스트와 화려한 컨텐츠들로 인해 우리의 뇌는 더욱 많은 불꽃을 얻었지만, 뉴런에 불꽃이 많이 일어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불꽃만 가지고는 덜익은 지식을 충분히 익힐 수가 없고, 결국 소화하지도 못하게 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알맹이는 비어 있는 그런 지식들만 쌓이게 되는 수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예측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할 듯 하다. 어느 때보다 쉽게 새로운 정보에 접근할 수가 있고,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들을 다룰 수 있는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점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이미 그런 환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들을 버릴 수 없고, 앞으로도 점점 효율성을 중시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술들이 개발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환경 속에 우리가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생각하는 능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서하는 습관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독서하는 삶을 공동체가 함께 추진하여 모두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대교와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 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이 그래서 아주 모범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주일에 한권의 양서를 함께 읽음으로써 독서를 습관화할 수 있으며, 서평쓰기를 통해 책의 메세지를 내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 또한 알 수 있어 더욱 풍성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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