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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Aug 23. 2022

행동력이 뛰어나서 위험한 인물

키워로 남아있는 것이 어쩌면 다행일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없는 농담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 농담을 한 사람은 우리 회사의 다른 부서 상사인데, 회사 단체 활동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어느날 점심식사를 함께 한 후에 나온 이야기였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사무실로 복귀를 하고 있던 중이었고, 마침 개천을 건너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실험실에 있는 시약을 갖다가 저 개천에 몰래 넣으면 재밌는 일이 생기겠다"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물론 화학구조물인 시약을 개천에 버리면 안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을테지만 아주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차피 하지도 않을, 할 용기도 없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저 조금 우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 목적은 완전 실패한 것이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익명성을 힘입어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거나 조롱할 목적으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매우 나쁘게 생각한다. 인터넷 실명제를 하게 된다면 그런 글들의 70% 이상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실명을 걸고는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키보드 워리어' 일명, '키워' 라고 하는데, 나는 실제로는 행동하지도 못할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나에게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했던 그 상사와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느끼는 것이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보는데, 만약 키워들이 키워가 아니고 정말 그 말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한 말들이 행동으로 실행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을 해봤다.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은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최근에 읽은 책인 루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에 관한 많은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앞 부분에서는 그의 과학을 향한 열정과 과학자로서의 우수한 자질 및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와 통찰들에 대해 소개한다. 나 역시 초반부에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는 그에 관한 긍정적인 확신들이 생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연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매우 많은 사람이었고, 과학자로서 배울 점들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의해서(혹은 그의 팀에 의해서) 확인되고 분류된 어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과 그가 겪은 두 번의 불운(화재와 재난)으로 인해 한순간에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그러한 불운을 오히려 성찰의 기회로 삼았고, 생각을 바꿔 위대한 성과를 내기까지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연구 결과를 빠르게 발표하는 것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럼으로써 귀중한 연구결과를 버리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연구를 하는 그가 갖고 있었던 믿음과 그가 굳게 지키고자 했던 사상이었다. 그는 분류학에 빠져들수록 인간이 진화의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였고, 인간을 대상으로도 더 뛰어난 부류가 있다고 굳게 믿으며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개한 사람들은 번식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역사상 가장 최악의 법이 미국에서 실시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수많은 여성들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편파적이었냐면 대부분의 시술이 유색인종에게 행해졌다는 데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또한 그는 심증적으로 사람을 독살한 살인자였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승승장구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교묘하고 비겁하게 처리하였는데, 사망한 사람에게서 발견된 독은 그가 어류 수집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물질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원하는 어종의 물고기를 쉽게 얻기 위해 강물에 소량의 스트리크닌을 풀곤 하였다. 그 물질로 인해 근육 경련이 일어나 물 위로 떠오른 물고기는 그의 새로운 성과물이 되곤 하였다. 


이 책의 저자가 느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감정을 따라가 보면 경외감에서 실망감을 넘어 분노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그에 대한 어떤 사회적인 처벌이 없었음을 알고 있었고, 스탠퍼드 대학에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리는 조던홀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그녀는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쩌면 그에 대한 처벌은 가장 그가 괴로워할 방법으로 이미 일어난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평생을 다 바쳐서 이룩했던 물고기 분류는 학술적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의해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에 의해 물에 사는 동물들을 통틀어 '물고기'로 분류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보다 체계적인 분류 방식에 의하면 '물고기'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이미 분류된 다른 그룹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생명체가 사는 서식환경이 분류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과학자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을 하며 우주적 관점에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의 무의미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인간들이 서로 연결되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참 가치를 경험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그녀에게 항상 하던 세상의 덧없음과 인간의 무의미함과도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작은 삶이 갖는 가치를 알아야 하고, 그 가치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시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다른이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생각났다. 그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대해 깊이 조사하며 거의 그와 동일시 된 것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글을 썼다. 나는 그의 책에서 그가 프로이트나 다윈에 대해서 말할 때, 그가 말하는 건지 그 인물들이 말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한 인물의 삶을 조사하면서 그에 대한 글을 쓸 때는 때로 저자의 목소리와 그 인물의 목소리가 같이 들릴 때가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올리버 색스 역시 화학에 대한 흥미가 매우 커서 그가 어렸을 때 실제로 특정 화학물질 덩어리를 연못 속에 던져 넣기도 했던 일화가 생각났다. 물론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교활한 목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한 행위를 한 것이라는 생각에 두 인물이 겹쳐보이기도 했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서전과 달리 다른 작가에 의해 씌여진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개인적이면서 보다 객관적인 평가들도 확인할 수 있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Photo by Y 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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