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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Mar 27. 2024

에세이에 손이 가는 이유

오랜 침묵을 넘어 쓰게 된 글

  글을 쓸 때 가장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머리 속에서는 쓰고자 하는 내용이 흩어져 있는데, 이 내용들을 어떤 순서대로 배열해야 할지가 고민이 될 때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시작하는 말을 뭐로 쓸지 결정하지 못 할 때다. 진짜 짧은 글조차 쓸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기간을 꽤 오래 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뭔가를 적으며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풀어낼 생각에 마음이 약간 벅차오르는 것 같다. 오랜 침묵을 끝내고 시작하기 좋은 것은 역시나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적는 것이다.


  편견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고정적인 기본값을 갖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값에서 벗어난 경험을 할 때 삶의 특별한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우리가 유치원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기본적으로 예상되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있을 텐데 근육질의 키가 큰 서양 남자가 나온다면 어떨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1990년에 개봉한 영화 [유치원에 간 사나이]가 딱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1990년에 나는 8살이었는데 지금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을 소환하며 글을 쓰는 상황이 약간 재밌게 느껴진다. 당시 그 영화의 제목을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근육질의 오스트리아인이 왜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었다. 터미네이터라는 인상이 워낙 강력해서 더 그랬을 테지만 영화 제목 그렇게 지은 의도는 분명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궁금증을 일으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패트릭 브링리의 첫번째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또한 그런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책이었다. 뉴요커에서 일하던 젊은 사람이 전혀 관련이 없는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데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궁금증을 일으켰다. 경비원하면 떠오르는 내 머릿 속 인물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매일 인사하며 볼 수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경비원의 업무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젊은 사람이 하기에는 뭔가 역동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저자에게는 에너지 넘치는 역동적인 일보다 경이로운 장소에서 혼자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내 삶에서 의미있는 것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저자처럼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할 만한 때가 언제였을까… 곧바로 2013년이 떠올랐다. 박사과정을 시작했던 그 해,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만약 내가 지나온 시간에 다리가 있다면 2013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생기고, 아직 신혼이었던 우리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이 겹쳤던 그 때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는 극복하지 못했을 것'라는 것이다.



  저자는 큰 슬픔을 겪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찾게 되었다. 그에게는 거대한 미술관이 바로 그 장소였는데,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곳이 나에게 그런 특별한 장소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꽤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특별히 바다가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자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오랜 시간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고 고백한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그 작품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을 감상자들이 잠깐 들이는 시간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작품을 그저 지나가면서 보는 정도에 그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힘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는 자연이 주는 힘 역시 놀라운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경이로운 자연 풍경을 예술 작품에 비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귀중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특별한 그곳을 떠났다. 만약 내게도 몇 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왠지 오롯이 글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글쓰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글쓰기는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 중 하나다. 저자는 미술관 동료들과 친밀한 사이으므로 그가 경비원을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언제라도 동료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인생 친구들이 있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내 삶에도 서로가 서로의 글을 읽는 독자가 되어주고, 서로의 글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자신의 삶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진솔하게 담긴 에세이를 읽는 것은 큰 기쁨 중 하나이다. 나는 독자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다분한 에세이보다는 잔잔하게 자기 삶을 나누는 글을 읽으며 마음 속에 일어나는 조용한 파문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을 읽을 때 약간의 지루함을 참아낼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조용히 생각하면서 평소라면 떠올리기 힘들었을 주제들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Photo by Thought Catalog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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