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족이니까 나중에 설명하면 된다. 은연 중에 이 생각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무례를 범해도 괜찮다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나보다. 가족이니까 그정도는 이해해줘야지. 이 생각은 내가 객체가 되었을 때는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지만, 내가 주체가 되어 다른 가족에게 이해하기를 강요하게 되면 폭력이 될 수 있다.
마음씨 착한 누나는 동생의 짐을 들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리가 아픈 동생은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길을 차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누나는 친구와 함께 돌아오는 그 길에서 동생의 가방 안에 있는 간식거리를 발견하였다. 달콤하고 사르르 녹는 초코렛은 고된 10분의 귀가길에 동생의 짐까지 짊어지고 가는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 친구와 함께 동행하는 그 길에 달달한 간식을 함께 먹는다면 친구와의 사이도 더욱 좋아질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동생에게는 나중에 사정을 잘 설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기어이 동생의 초코렛을 까서 친구와 맛있게 나눠먹었다.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친구도 좋고 누나도 좋고, 동생만 잘 이해해주고 넘어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니 편안한 표정의 동생은 소파에 앉아 들어오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딱히 무슨 말을 할 상황은 아니었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 누나는 가장 시급한 일을 먼저 해결하려 하였다. 바로 동생에게 다가가 이실직고를 했다.
"오는 길에 힘이 들어서 친구와 함께 너의 초코렛을 나눠 먹었어. 친구가 먹고 싶어 해서. 나중에 내가 사줄게. 미안해"
"......"
아직 어린 동생은 누나가 자기 짐을 들어준 것은 생각치 못하고, 초코렛을 당장 먹을 수 없다는 것만 머릿 속에 떠올랐다. 누나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그 초코렛의 존재를 떠올리지도 못했으면서. 화를 못이겨 부득부득 소리를 지르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아빠는 무심코 한 마디 말을 던졌다. 그리고 그게 아이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켰다.
"누나가 친구도 같이 있어서 함께 나눠먹고 싶었나봐. 아빠가 하나 더 사줄게. 먹고 싶어하는 친구랑 나눠먹을 수도 있지. 응?"
"그래도 남의 것을 주진 않아!!"
남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자기것이 아닌 것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걸 아이는 알고 아빠는 몰랐다.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켰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항상 그런 할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계셨던 걸 아빠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 작은 초코렛 하나에도 오래된 기억들까지 다 소환되었던 하루였다. 누나는 미안하고, 아빠는 민망하고, 엄마는 안타깝고, 동생은 분노했던... 이걸 모르는 누나의 친구만 공으로 초코렛을 얻어먹어 기뻐했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