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친절하게 변한 사람

진정성이 의심이 될 때는

by 서규원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몇년간 대화도 없이 지냈던 사람이 최근에 친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는 함께 일을 하지 않아서 없는 사람처럼 지내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을 외면하면서 지내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아서 마주칠 경우에 인사를 하긴 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그였다. 그 역시도 자신의 시간을 들여 나를 도와주었고, 항상 대화가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같은 팀원으로 생각하고 대하였다. 하지만 부서 내 조직이 개편되면서 그와는 서로 다른 팀이 되었고, 같은 사무실에 근무할 뿐 그와는 어떤 일도 공유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다른 팀이 되더라도 어떤 사람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관계가 아닐 때 더욱 편하게 대할 수도 있다.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와는 어떤 불미스러운 일로 간접적으로 엮이게 되었고, 그저그런 관계가 안 좋은 관계가 되었다.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출처가 누구부터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 할 수 밖에 없는 가벼운 인사도 그는 가끔씩 피하였고, 서로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를 무시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팀도 다르고 함께 하는 업무도 없어서 회사 생활이 힘들진 않았고, 오히려 더 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근, 그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본 적이 없었던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면 사람이 달라졌다고 생각해 볼텐데, 나한테만 친절을 베풀고 있다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건지 하는 생각부터 들게 된다.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사람의 의도가 무엇일까, 진정성이 자꾸 의심되는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데, 일단 이 사람의 표정이 달라졌고 말투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 나에 대한 과거의 악감정을 스스로 정리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에 대한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진솔한 대화를 함께 나눈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없는 사람처럼 대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이건 나쁘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진정성을 추측하는 것만큼 헛수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대방의 호의는 그 자체로 고맙게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그 호의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나도 호의적인 모션을 취하는 것이다. 그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과거의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가 호의로 변한 것은 의미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친절하게 대한다면 나역시도 친절하게 대하면 된다.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반응하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약간의 가식이 첨가된 반응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 정도는 남겨두는 것도 나를 위해 좋겠다는 결론은 내렸다.


누구나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는 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가면을 쓰고 상대를 대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호의는 그 진정성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고맙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호의에 대한 적절한 응답으로 나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사진: UnsplashZulmaury Saaved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