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선택의 순간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by 서규원

사람은 어느 집단에 속해있는 것을 좋아해서 소속감을 느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잘 알지 못하더라도 자기와 같은 편에 있다고 여겨진다면 그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인지할 때에 자기와 같은 편에 있는지 아니면 상대편에 있는지는 대단히 중요한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피아를 구분하는 법을 알았을 것이다.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의 범위는 처음에는 매우 좁았다가 점차 확장되어 왔는데,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사회의 규모가 커지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정이 꼭 필요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자기편이라고 인식하는 범위의 크기에 따라서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응원하는 지역 축구팀이 있다고 한다면, 같은 프로리그에서 다른 지역팀과 경기를 할 때 그 팀의 선수들을 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대표팀 간의 친선경기를 한다면 프로축구경기에서 적으로 간주했던 상대팀의 선수가 내가 응원하는 나라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지역이라는 경계가 국가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인식하는 우리편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만약 여기서 더욱 범위가 확장되어 우리가 사는 행성을 하나의 공동체로 여길 수 있다면,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언제부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자기편으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 인간이 소속감을 느낄 때 편안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본성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터득하게 된 성질 중 하나일까?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에는 인간을 비롯한 많은 종의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이 존재했었고, 사라지기도 했는데,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종은 단연 인간이다. 인간이 가진 신체적 조건의 불리함에도 오랜 시간동안 강력한 생존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집단으로 협력할 수 있는 특성 때문이었다.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서는 사람이 숱한 환경 변화의 위험과 주변 포식 동물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주된 비결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능력을 꼽았다. 사회성이 있다고 알려진 곤충들의 경우에도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 개체들이 정해진 역할에 따른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보여주는 사회성의 모습은 더 높은 차원의 것임이 확실하다. 인간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서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사람들끼리도 이런 신화를 통해 서로 깊은 유대감을 갖고 더 큰 집단을 이룰 수가 있었다. 이런 유일하고 독특한 언어생활이 협동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이는 종 전체의 세력에 있는 다른 종들과 확실한 격차를 보이는 핵심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혁명의 순간을 이야기했는데, 그 첫 번째가 인지혁명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살았던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까지 이주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수렵 채집을 했던 인류는 음식을 찾아 계속 이동하는 생활을 해왔지만 대륙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에 도달했을 때, 이미 유럽에서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만나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들과 함께 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그 땅을 지배하게 되었다. 같은 인간속에 해당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엄연히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이었다. 그들과 섞여서 산다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와의 격차는 지구상에 사는 인종이나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이질감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만의 집단정신으로 네안데르탈인들을 몰아내었고 결국 유럽 대륙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인류의 협동은 사냥할 때 특히 잘 드러났는데, 수십명의 사람들이 매머드를 사냥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된다. 협동이 없이는 거대한 매머드를 사냥할 수 없다. 그동안 매머드의 멸종 원인은 기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알려졌지만, 더 믿을만한 이야기는 인간이 너무 사냥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tristan-colangelo-WKFxRhgAKOI-unsplash.jpg 이제는 화석 모형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매머드,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사냥을 덜 했더라면. (Photo by Tristan Colangelo on Unsplash)



인간들이 협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모의 인간집단이 필요했고 그들 각자가 공통으로 따를만한 믿음이 필요했다. 이미 수렵채집에 의한 생활을 하던 과거에도 사람들은 서로 협력해서 큰 건축물을 짓고, 종교적 의미를 지닌 상징물들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음식거리를 찾아 계속 이동을 해야 하는 수렵 채집 생활에서는 사회의 규모가 커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 중요한 두 번째 혁명이 농업혁명이다. 떠돌던 사람들이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세대를 거쳐 수렵채집생활에 최적화된 우리의 몸이 정착해서 농경생활을 하기에는 많은 고통이 따랐다. 그리고 이 후의 삶의 모습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새로운 개념도 생겨났다. 일단 사람의 몸은 오랜 시간 고강도의 농사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일을 해야했고 덕분에 식량생산은 늘어서 잉여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인류 전체에게는 덫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덫이 되었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시작한 농경생활이었지만 정작 행복한 삶은 보상받지 못했다. 더 고되게 일하고 더 영양가없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자유롭게 식물들이 자라던 벌판은 점차 농경지가 되었고 늘어난 식량만큼 인구도 증가하였다.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많은 토지가 농사를 위한 땅이 되었고, 이로 인해 식량생산은 늘어났지만 작물의 종류는 줄어들었다. 농경시대 이후 사람들이 섭취하는 음식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과거에 음식을 찾아 이동하던 삶의 공간적 범위는 급격히 축소되었고, 잉여식량을 지키기 위해 더 철저한 방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미처 줄어든 작물의 종류에 따른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고, 전염병의 창궐로 인한 피해와 병충해 및 자연 재해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곧 치명타가 되었다.



농사일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라면 안해도 되는 내일에 대한 염려를 늘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농경생활을 위한 정착생활은 어떤 면에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는데도 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농경생활이 정착되는 데는 오랜 세대에 걸친 시간이 필요했다. 농경에 익숙해진 세대는 과거의 수렵 채집생활에 대한 기억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늘어난 인구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일단 많아진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 식량을 수렵채집을 통해 마련할 수가 없었다. 인간들 스스로 인구수를 줄여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이유로 농업혁명은 돌이킬 수 없는 덫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135p.


인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변화를 시도했고, 막강한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불행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 되었고 농사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사회의 규모가 커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계속 이동해야 했을 것이고 국가를 이룰만한 영토와 사람이 불안정해 진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통치가 이뤄질 수가 없다. 그리고 국가라는 큰 규모의 인간사회가 있지 않았다면 과학기술의 발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류가 발전해 온 역사를 돌아볼 때 많은 위기와 기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가 대륙을 벗어나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선택을 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옮겨다니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큰 국가를 이루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인류는 지금 과학혁명을 통해 생명공학, IT 기술 등 최첨단 기술의 개발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자들 가운데는 결국에는 인간이 기술을 통해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인간들이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한계마저도 극복하고 신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인류는 많은 선택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고 지금도 우리는 계속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한가지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하는데, 나는 어떤 맥락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는 말보다는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을 반복해서 맞게 된다는 것을 짚어보길 원한다. 과거에는 당시에 선택한 것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불완전하긴 해도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과관계만이 아니라 당시에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사피엔스가 농경생활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인구가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다면 미래는 어떠했을까?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지금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가 하는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만약 지금 하는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다면?’ 이라고 자문해 본다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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