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끝에서 그녀는
병문안을 갔다.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알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그녀를 조금 더 안다는 사람들과 함께 갔다. 혈액암을 앓고 있는 그녀는 오랜 시간 병원을 드나들었다. 아직 젊은 중년의 꽃다운 나이다. 완치와 재발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려주었고, 우리 지인들은 그 곁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나 이번 병실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더 이상 소생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과 그녀의 전체적인 모습에서 의미하는 것이 많은 듯했다.
그녀의 몸무게가 39킬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숫자의 의미는 이미 묵직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뼈와 가죽만 남은 몸, 그 안에서 간신히 이어지는 숨. 인간이 어디까지 가벼워질 수 있는지를 눈으로 보는 일은 차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눈을 감은 그녀를 보며 그 마른 모습에서 예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고통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자리에서, 생의 가장 순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병실은 고통과 연민의 장소다. 아픈 몸과 닫힌 시간과 모든 것이 제한된 공간이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은 그 아련함과 고통을 깊이 아는 시점일 것이다. 인간은 아플 때보다, 아픔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에 더 깊이 흔들린다. 왜 나인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를 묻는 순간, 고통은 단순한 통증을 너머 서게 된다.
그런데도 그녀는 뜻밖에도 나지막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려준다. 병실에서 감사라는 말은 쉽지 않을 텐데,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뭔가 전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내려놓은 자각, 살아온 시간의 총량을 통해서 돌아보는 평온이 그 말의 바탕에 있었다. 고통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병실은 생사의 문턱이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맞닿아 있는 자리에서, 사람은 삶을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의 고통만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과 이미 누린 것들, 관계와 기억의 무게가 함께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시간은 그렇게 성찰일 때 고통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는 이의 고요가 있었다. 다 내려놓은 여유와 삶을 다 써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초연함이 있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겨울바람이 살랑 불어와 스친다. 살포시 불어와 휑하니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은 그렇게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꾼다. 사람은 저마다 아픈 것을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저절로 두 손을 모두 모으고 간절해지는 순간이 나도 모르게 일어난다.
초연하게 마지막의 시간을 건너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서 한 사람의 진심을 보았다. 더 이상 증명할 것도, 주장할 것도 없는 상태. 삶을 다 내려놓은 모습. 그녀는 새털 같은 가벼운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쓸쓸하다. 그 쓸쓸함은 세상과 마지막으로 마주 서는 홀로의 시간이다. 모두 언젠가는 자기 삶의 총량을 들고 마지막 문 앞에 선다.
그 문턱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남는 것은 맑은 한 줌의 이슬처럼, 살아오며 길어 올린 회상일 뿐이다. 어떻게 사랑했는지, 무엇에 감사했는지, 어떤 순간이 중요했는지는 모두 소용없는 일뿐이다.
죽음은 삶이 끝까지 도달한 지점이다. 모두 그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그 문턱에 설 것인가일 것이다. 다 내려놓은 모습으로 홀로 고요를 마주하게 되는 시간.
~~~~~-----==~-----ㅁ
병실을 나서며 오래도록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것 같아서 그리고 아직 젊은 꽃중년이라서 더 쓸쓸하다. 언젠가 모두 그 문턱에 설 때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바람이 휑하니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듯, 그녀의 향기는 내 삶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는데. 그녀는 우리가 만나고 한 달 뒤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