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by 현월안




5호선 지하철 안에서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그 좌석은 약자의 배려이고 사회의 약속이다. 그 임산부 배려 자리에 체격이 조금 있는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임신 초기의 젊은 여인이 조심스레 그 자리에 다가가 자리를 양보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 짧은 순간 실랑이로 번졌다. "진짜 임신한 거 맞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묻는 중년여성의 말이 지하철 안에서 쩌렁하게 울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서, 젊은 여인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내주며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갈등은 사라졌지만, 전철 속의 공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임산부는 임신 초기라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멀미가 심하다고 분명히 젊은 임산부가 말했다. 그 말은 그녀가 사회 모든 이에게 자세히 들려주는 설명이었다.



임산부의 시작은 몸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시작된다. 생명은 연약한 상태로 첫발을 내딛는다. 아직 임산부의 외형으로 드러나지 않은 변화, 몸속에서만 일어나는 위대함은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중년 여성은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을까. 중년 여인은 왜 확인하려 했을까. 또 아이를 낳아본 기억이 있다면, 그 임신의 시작을 알 텐데도 말이다. 사람은 살아온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먼저 믿고 양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먼저 사실을 가려내려 든다.



배려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양보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보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임산부를 외면함으로써 생기는 상처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성숙이다. 성숙한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내어주는 쪽을 택한다.



요즘은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이 늘고 있다. 저마다의 삶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더욱, 누군가가 임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개인의 용기를 넘어 사회가 함께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 선택은 미래에 대한 신뢰이고, 이 세상이 여전히 살아볼 만하다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의 배려석은 좌석 하나를 비워두자는 약속이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고통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명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이다. 진짜냐고 묻기 전에 얼른 양보하는 사회, 확인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온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날 임산부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안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몸 안에서 자라는 작은 생명처럼, 이 사회에도 분명히 자라고 있는 선의가 있다고. 조용히 자리를 내주던 그 한 사람처럼, 말없이 믿어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때로는 삶이 거칠지만, 인간은 배려를 통해 더 나은 존재로 빚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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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그저 사람으로 대하는 순간, 사회는 조금 더 사람 사는 곳이 된다. 그 작은 온기가 모여, 다음 세대가 앉게 될 자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해지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