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글을 쓴다
읽히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글을 또 쓴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고
비닐봉지에 넣어달라고 했더니
동그란 눈을 가진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나는 환경운동가가 꿈이에요' 한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에코백을
가지고 다니라며 해맑게 웃는다
미국의 어느 가수가
CD 케이스를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로 만들었다는 뉴스를 봤다
누군가가 환경을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단지
뉴스거리려니 한다
영원히 남기기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세상엔 썩지 않는 물건들 천지다
그것들로 인해 숨 막혀 죽을 지경이다
어찌 물건뿐이겠는가
무참히 버려질
내가 쓰는 글은 또 어떠한가
세상에 뿌려졌다면 썩어야 하고
유독가스 없이 죽고 자라고
또 생겨나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제대로 소화가 안 되는 글이
쓰레기통에 처참히 버려질 걸 알면서
또 쓴다
읽히지도 썩지도 않는 글을
왜 그렇게 쓰는 걸까?
앞다투어 쏟아내는 수많은 글이
오늘도 홍수를 이룬다
어느 구석에 처박힌
소화 안 되는 나의 글이
누군가의 정서를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내게 묻는다
더 이상 사람들 가슴에 남지 않는
나의 글은 연약하기 그지없다
가벼워 바람 불면
훅하고 날아갈 것들 뿐인데
쓰고 또 쓴다
10년 전에 써 놓은 글을 펼쳐보았다
희미하게 흩날리는 그날의 부스러기가
오늘의 시간 위에 내려앉았다
두 개의 시간은 서로 섞이어
겉돌기도 하고 틀어지기도 한다
때론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자의식이 쏟아져 나온 찌꺼기들이
잠시 꿈틀거릴 뿐
조금은 설익고
어리석었던 지난 청춘이
오늘의 고민과 삶으로 연결되어
단지
누가 내 글을 소화하든 말든
살필 겨를 없이
마구 쏟아냈던 것
어설픈 나의 결과물들이
다른 이가 불편하지 않기를
물줄기가 실핏줄처럼 모여
수많은 글들이 큰 강물을 만들어
유유히 흐를 때
단지
어색하지 않을 만큼만
곁가지에
조용히 흐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