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오늘도 그 자리에

도시의 시멘트 바닥은 단단하다

by 현월안




도시의 시멘트 바닥은 단단하다. 도시의 바닥은 늘 평평함을 유지하고 균열을 허락하지 않으려 반듯하게 유지한다. 흔히 그 위를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발아래 무엇이 있는지, 그 단단함 아래 어떤 삶이 숨어 있는지 살피지 않은 채로. 그러다 문득, 아주 낮은 곳에서 시선이 멈춘다. 시멘트 아주 작은 틈, 그 틈을 비집고 고개를 내민 초록을 만날 때가 있다.



잡초는 그렇게 자란다. 보호받지 못한 자리에서, 환영받지 못한 땅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이름으로. 밟히고 찢기고 쏟아지는 빗물에 씻기면서도 잡초는 몸을 낮춘 채 살아 있다. 마치 세상에 기대하지 않겠다는 듯, 아니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자세로 그 자리를 지킨다.



때론, 그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괜히 마음이 움찔한다. 수없이 밟히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일이 어찌 그리 자연스러운지, 그 질긴 생명 앞에서 인간은 늘 무심하다. 이름 붙일 가치가 있는 것들만 기억하고, 이름 없는 것들의 삶은 쉽게 지나친다. 그러나 잡초는 그 무심함을 탓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잎을 밀어 올리고, 다시 햇빛을 향해 몸을 기울일 뿐이다.



잡초의 삶이 강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다른 삶을 꿈꾸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한 화단을 부러워하지 않고, 비옥한 흙을 바라지도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 몫의 조건 안에서, 힘껏 푸르게 사는 법을 안다. 그 법은 배운 적도, 가르쳐준 적도 없는 생의 본능이다.



삶 가운데 어떤 것은 가혹하게 살아가고, 어떤 것은 운 좋게 보호를 받는다. 또 어떤 것은 이유 없이 푸르러진다. 그 차이를 재능이나 노력, 또 운명 같은 말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잡초는 말없이 보여준다. 그 차이는 대부분 주어진 자리의 차이라는 것을. 잡초의 출발선은 늘 불균형하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지속된다.



도시의 시멘트 틈에서 터를 잡고 뿌리내리고 사는 생명. 그 질펀한 삶은 말 없는 은유다. 누군가는 평평하고 아늑한 곳에서 세상을 넓게 누리며 살고, 누군가는 질퍽한 바닥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잡초는 불평 대신 잎을 밀어 올리고 시간을 선택한다.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견디는 쪽을 택한다. 삶은 주어진 곳에서 끝까지 살아내는 일임을, 잡초는 매일 새 잎으로 증명한다.



길가에 외로이 핀 초록을 만나면 뒤늦게 마음이 머문다. 세상은 여전히 단단하고, 인간은 자주 무심하다. 그러나 시멘트 틈에서, 저마다의 균열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살아내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드러내지 않아도,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름 모를 생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는 날이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향한다. 나 또한 완전한 땅에서만 살아온 존재는 아니었음을, 금이 간 자리에서 숨을 고르며 버텨온 시간들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삶은 그렇게 작고 낮은 곳에서 가장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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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충분히 깊은 철학으로. 그 앞에서 잠시 멈추어 본다.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끝까지 버틴다는 것의 존엄을, 이름 없는 생이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