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고단한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가끔 시간이 나면 목동 가장자리를 스쳐 흐르는 안양천을 따라 걷는다. 일부러 시간을 내기도 하고, 마음이 조금 비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곳이다. 안양천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매번 다른 표정으로 흐르고, 그 가장자리는 언제나 작은 생명들로 분주하다. 오리와 비둘기는 이제 눈에 익어서 익숙하고, 가끔 왜가리나 백로를 만나는 날이면 걸음이 나도 모르게 느려진다.
백로는 유난히 희고 고요하다. 홀로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주변의 소리를 낮추는 힘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을 뿐인데, 그 장면이 오래된 그림처럼 마음에 남는다. 큰 날개를 펼쳐 하늘로 오르는 순간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준비되지 않은 감탄이 먼저 튀어나온다.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는 신기함이 있다. 말보다 빠른 반응은 나도 모르는 진심이다.
며칠 전에는 안양천 옆 사철나무 주변에서 참새 떼를 보았다. 가지와 잎 사이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던 작은 존재들이, 어느 순간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왔다. 그 장면은 꼭 밤하늘의 별이 갑자기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작고 작은 생명들이 흙바닥과 나무 위를 오가며 총총거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특별히 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날은 좀 달랐다.
나무가 많은 공원이나 숲에 가면 어김없이 새소리가 들린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일 때면, 저 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생각한다. 이름을 알면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차를 타고 가다 겨울나무 꼭대기에 얹힌 둥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집일까, 어떻게 저 높은 곳에 저토록 단단히 지었을까. 작은 나뭇가지와 자투리를 하나하나 물어 나르며 쌓아 올렸을 시간을 가늠해 본다. 그 시간에는 분명 바람과 추위와 포기의 유혹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이가 더해지면서, 관심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진다.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오래 버티는 것들에 눈이 간다. 어떻게 저 자리에 그렇게 살아 있는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으면서도 자기 몫의 하루를 다 건너는 존재들이 궁금해진다. 잘 알지 못해도, 인간과 같은 동시간대에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시간을 많이 썼다는 이유일 것이다.
작은 생명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다른 삶의 리듬을 잠시 빌려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시간은 늘 빠르고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새들의 시간은 머뭇거림과 기다림을 포함한다. 날기 위해 오래 서 있고, 이동하기 위해 충분히 살핀다. 그 느린 준비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보인다.
생이 고단하다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쉬운 생명은 없다. 백로의 고요함에도, 참새 떼의 경쾌함에도 저마다의 무게가 있다. 그 무게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자주 말로 토해내지만, 작은 생명들은 몸으로 견딘다. 말이 없어서 가볍게 보일 뿐, 그들의 하루도 바람과 배고픔과 위험을 통과해 온 결과다.
안양천을 걷다 보면, 나의 하루도 그 작은 생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반복적이며, 그래도 결국은 살아내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에서 그렇다. 다른 생명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로움은, 어쩌면 나 자신의 삶도 그 어떤 삶도 그만의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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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생각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다. 내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것이 내 삶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이전보다 덜 거칠어진다. 안양천의 새들은 말이 없지만, 충분히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어떤 삶이든 고단하고, 그래서 더욱 신비롭다는 것을. 오늘도 그렇게, 안양천을 따라 걷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덜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