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하나씩 덜어내는 일

통증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by 현월안




어금니 하나를 뽑았다. 오래 말썽을 부리던 자리라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정작 빠져나가는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낯설었다. 통증은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그 자리가 비어있음은 오래 남았다. 혀끝은 자꾸 그쪽으로 가서 없는 것을 확인한다.



움푹 파인 자리에는 작은 동굴 같은 침묵이 있다. 바람이 지나가듯 허전함이 스며든다. 고통은 빠져나갔는데 허전함이 남았다. 그 묘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편안함과 사라졌다는 상실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묘한 감정은 삶의 많은 순간들과 닮아 있다.



흔히 아픔을 제거하면 평온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픔이 사라진 자리에 편안함보다 공백이 먼저 온다. 그 공백은 그 아픔이 살아 있게 붙들던 한 방식은 아니었느냐고.



살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아프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나를 떼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포기하는 일. 멀쩡히 붙어 있던 것을 어느 날은 병이라 부르고, 어느 날은 고통이라 부르며, 결단을 하고 이별을 고한다.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필요에 근거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은 기억한다. 함께 버텨온 시간을.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 어디 어금니 하나뿐이겠는가.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덜어낸다. 젊음이 그렇고 확신이 그렇고, 또 사람도 그렇다. 되돌릴 수 없는 믿음의 형태가 달라진 관계들,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는 꿈들까지. 그것은 모두 한때는 나였고 나를 지탱하던 일부였다. 필요 없어졌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유로, 또 무거워졌다는 이유로 떠나보낸다.



그런데 그렇게 덜어낼수록 몸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감각이 날이 서고 예민해진다. 하나를 잃었을 때 그 상실감, 그 자리가 얼마나 내 삶에 깊게 박혀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작은 어금니 하나에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데, 남은 세월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보내야 할까.



그렇지만 비어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고 감각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상실일지 모른다. 허전함은 몸이 여전히 감각하고 있다는 신호다.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라는 증거다. 인체는 늘 변해가면서도, 그 변화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매번 작은 고통을 온 감각으로 치르기 때문이다.



어금니를 뽑은 날 이후 밥 맛을 잃었다. 이전보다 천천히 씹고 더 조심스럽게 삼킨다. 없어진 자리를 보호하듯, 몸은 나도 모르게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이것이 지혜일 것이다. 조심히 그 빈자리에 맞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 무리하게 않고 살살 달래듯 호흡을 조절하는 일.



삶은 상처를 통해 이전의 속도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빠르게 삼키던 것을 천천히 씹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과정에서 삶은 잘 다독여야 한다는 것을. 늘 무언가를 잃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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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하나를 잃고 몸을 조용히 어르고 달래며 밥을 먹는다. 그 허전함을 품고도 삶은 계속된다. 비어 있음이 자연스러워지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다. 인체는 그렇게 성숙해 간다. 어긋난 치아상태로 또 오늘을 살아낸다. 비어 있는 자리 하나쯤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