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길들여 온 사람들
오랜 지인에게 바이올린 연주회 초대를 받았다. 오래도록 바이올린을 배워 온 지인의 동호회와 젊은 연주자들을 초청해 함께 공연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동호회 멤버의 상당수가 중년이라는 말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바쁜 일상 사이에 끼워 넣는 기분 전환 정도로 생각했다.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지만,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사람들과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작은 소극장이라서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가까웠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옷차림은 지극히 평범했다. 특별하기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오프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렀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고급스럽고 합이 잘 맞아서 그 공간에서 내 감정이 그렇게나 크게 달라질 줄은 미처 몰랐다.
기대했던 것보다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첫 음이 공기를 가르자마자, 나의 모든 감각이 반응했다. 바이올린 음악이 가진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흐르고 있었다. 아름답고도 맑고 깊은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솔로 연주와 또 합을 이루는 선율 모두가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누군가는 숨을 고르고, 누군가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가 계속 이어지고 감동은 절제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들어 그 열기를 담으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예정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앵콜 공연은 몇 차례나 이어졌다. 공식적인 순서는 끝났지만 누구 하나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바이올린 선율이 고급스러운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바이올린의 고급스러움과 동호회 사람들의 노력이 마음을 울렸다. 연주자들은 동호회 회원들과 젊은 프로 연주자들이 섞여 있었지만 그 음 안에는 오래된 인내와 연습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후 간단한 피로연이 이어졌다. 동그란 접시에 김밥과 치킨, 떡볶이와 과일이 소담하게 담겨 나왔다. 화려하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정성이 충분히 들어 있었다. 회원들이 손수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접시를 들고 서서 방금 들은 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대목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어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연주한 이들만이 아니라, 듣는 이들 또한 그러했다. 요즘 사회와 경제의 불안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한다. 불확실한 내일을 앞당겨 걱정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날 바이올린 음악은 다른 의미를 보여주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주어진 하루를 오롯이 사는 일. 삶의 의미는 오늘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음악은 말없이 보여 주었다.
바이올린 동호회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은 삶의 활기를 음악으로 길어 올리고 있었다. 직업도 사정도 제각각이겠지만, 현을 켜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답을 찾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가. 그 답은 음표 사이에 있었다. 느릿하고 또 분명하게.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선택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내어 연습하고, 무대에 서고, 서로의 연주를 귀 기울여 듣는 선택. 그렇게 만들어진 저녁은 충분히 훌륭했다. 음악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지만, 삶을 견딜 힘을 건네준다. 그날 그 힘을 충분히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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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루가 음악으로 가득 차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어쩌면 삶에서 필요한 결심은 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성실히 충분히 채우는 것이다. 현악기 사이로 흐르는 그 시간이 나의 감각을 따습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