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떠남과 남음 사이의 균형

좋아하는 음식점이 사라지는 것은

by 현월안




좋아하는 음식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마음속 지도에서 익숙한 좌표 하나가 조용히 지워지는 일이다. 속이 얼얼한 매운맛이 간절해질 때, 생각보다 발걸음이 먼저 움직이던 곳이다. 그곳에는 엷은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작은 공간이고 애써 찾아야만 눈에 띄는 장소다. 아들과 함께 가게를 꾸려가던 조용한 쫄면집이다. 크게 요란하지도, 유행을 쫒지도 않았지만 그 집의 음식은 언제나 그 맛을 지키고 있었다.



메뉴는 소박하지만 건강한 것을 우선으로 두는 차림이었다. 신선한 채소가 넉넉히 담긴 쫄면, 자극을 덜어낸 담백한 채수 국물, 심심하지만 맛이 순한 무생채. 조미료를 많이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가끔 매운맛이 당길 때 글을 쓰다가 지친 하루의 끝에서 작은 호사처럼. 그 한 끼는 배를 채우는 일 이상의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 날, 문 앞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메모였다. 점심이면 이따금 사람들이 줄을 서던 곳이었으니,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여쭤보니 사장님은 고향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사장님의 얼굴이 이상하리만큼 밝아 보여서 마음 한편이 놓였다. 어떤 이별은 슬픔보다 담백함을 남긴다. 잘 마무리된 장면처럼, 다음 장을 향한 여백을 남기면서 말이다.



영업 마지막 날, 사장님은 하얀 백설기를 하나씩 건네주셨다. 그간 고마웠다는 인사를 담은, 과장되지 않은 선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건네받은 그 따뜻함 앞에서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도 못했다. 사장님은 가게에서 책을 읽으며 식사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셨다고 했다. 헤어질 즈음이 되어서야 서로의 일을 정확히 알게 되어 서로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 늦은 이해가 가게 안의 공기를 산뜻하게 흔들었다. 관계란 대개 그렇다. 다 알기 전에 이미 충분히 가까워지고,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서로를 조금 더 또렷이 알아본다.



쫄면 한 그릇을 충분히 먹었지만 마지막으로 음식하나를 더 포장해서 가지고 왔다. 용기 뚜껑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삶은 달걀이 두 개였다. 하나는 원래의 몫이고, 다른 하나는 끝내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주인 마음 같았다. 덤으로 얹어준 그 둥근 마음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사람의 정은 원래 설명 없이 전해지는 법이다.



살다 보면 혈육이 아니더라도, 오래 함께 시간을 견뎌온 사람과 공간에 깊이 길들여진다. 매번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서로의 하루에 조용히 자리하던 관계들. 그런 관계는 떠나갈 때 유난히 아련하다.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는 감각이 마음을 오래 붙든다. 이별은 그 관계가 얼마나 충분했는지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한동안 그 자리에 잔상이 남아 있을 테고 마음속 좌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기억 속으로 옮겨가,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누군가의 허기를 살뜰히 채워주던 한 끼의 온기, 말없이 건네받은 삶은 달걀 하나의 둥근 마음,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던 두 사람의 뒷모습. 그런 것들은 쉽게 퇴색되지 않는다.



삶은 떠남과 남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종종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애써 붙들다 지치기도 하고, 보내야 할 것들을 끝내 보내지 못해 아쉬워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서로의 다음을 응원하며 담담히 헤어지는 일이 삶에서 얼마나 많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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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한 젓가락도 남김없이 그 음식을 비워냈다. 남기지 않은 것은 감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삶은 누군가에게 크게 기억되지는 않더라도, 문득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그런 좌표를 감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