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숲에는 봄을 깨우는 이들이 있다
지인의 딸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에 우리 부부는 근처에 있는 화담숲 수목원에 들렀다. 축하의 말들이 공중에 흩어진 뒤의 시간, 여유롭게 주어진 시간 속에 자연의 순수와 맑음이 폐부로 들어온다. 아직은 겨울 찬기기 남아있다. 나무는 모두 반듯하게 서 있다. 잎을 내려놓은 나목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가지 위에는 밤새 내려앉은 겨울 찬기운이 쌓여 있는 듯했다. 그 풍경은 마치 동양화 한 폭처럼 색을 아끼고 여백을 물들여놓은 듯했다.
겨울 수목원에는 겨울나무가 산다. 봄의 화려함도 없이 여름의 풍성함도, 가을의 성숙한 빛도 없이, 오직 버텨낸 시간만이 남아 있다. 껍질은 거칠고 가지는 드러나 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흐르는 온기가 있고, 다시 잎을 틔울 준비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음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보여준다.
고요한 풍경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아직은 두툼한 외투 속에 몸을 숨긴 채 겨울숲을 거니는 사람들, 그리고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 있다. 큰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멈춰 서서 어딘가를 응시한다. 움직이지 않는 풍경 앞에서 그들의 눈빛만은 유난히 바쁘다. 무엇을 보는 걸까. 호기심에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제야 들려온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퍼지는 작은 지저귐.
정지된 듯한 겨울숲 속에서 홀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 있다. 새소리다. 일 년 내내 이 땅을 떠나지 않는 텃새들이, 추운 겨울을 살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몸으로, 얼어붙은 시간을 지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새소리를 따라 몇 걸음 옮기자 군데군데 탐조동호회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망원렌즈 끝이 향한 곳에는 박새, 쇠딱따구리, 오목눈이, 곤줄박이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참 신기하다.
그들의 사진 속 새는 빛을 머금은 깃털 한 올 한 올에 정성이 담겨 있었다. 같은 새는 하나도 없었다. 깃털의 색이 다르고 눈매가 다르고, 서 있는 자세마저 저마다의 다른 모습이었다.
잿빛과 흰빛만 남은 겨울숲에서, 새들은 유일하게 물감을 풀어놓은 존재였다. 흑백의 세상 속에서 그들은 이미 봄을 깨우고 있었다. 작은 몸으로 푸드덕거리며 가지를 옮길 때마다, 숲의 시간은 미세하게 움직인다. 나무가 길고 지루한 겨울을 견뎌내는 이유는 어쩌면 곁에서 이렇게 봄을 재촉하는 생명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저마다의 겨울을 지나며 산다. 잎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가 있고, 색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그때 삶을 끝까지 견디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소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와 스쳐가는 온기, 또 오늘처럼 우연히 들은 새소리 같은 것. 봄은 그렇게 조용히 오고 있다.
숲을 나설 즈음, 바람이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차갑지만 어딘가 순해진 공기.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변화였다. 자연의 순리는 언제나 그렇게 예고 없이 바뀐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봄을 키우고, 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 생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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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의 겨울숲은 모든 계절은 동시에 존재하는 듯했다. 끝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이미 시작은 자라고 있고, 침묵 속에서도 온기는 계속되고 있다. 봄 소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순간, 겨울숲에서 이미 봄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