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서로를 밝히는 존재

인간은 모두 타오르는 존재다

by 현월안




유년의 여름밤은 정전이 잦았다. 예고도 없이 형광등이 툭 소리를 내며 꺼지면, 시골의 밤은 순식간에 칠흑으로 가라앉았다. 마당의 풀벌레 소리만이 세상의 윤곽을 더듬고, 정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방 한가운데로 모여들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서랍을 열어 초를 찾았다. 성한 초가 없을 때도 많았다. 손가락 두 마디쯤 남은 자투리 초를 들고 잠시 들여다보던 순간, 그 짧은 것이 불을 밝힐 수 있을지 의심하곤 했다.



그러나 엄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성냥이 스치고 심지에 불이 옮겨 붙는 순간, 방 안의 어둠은 순식간에 물러났다. 짧은 초 하나로 그 공간이 환하게 드러나고 얼굴을 비추고 다시 세상을 밝혔다. 그때 알았다. 엄마는 단지 초에 불을 붙인 것이 아니라, 꺼져가던 세상을 다시 숨 쉬게 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엄마의 굳은 의지였다. 망설임 없이 불을 붙이는 의지. 길이를 재기보다 가능성을 믿는 마음. 빛이 충분할지 따지기 전에, 우선 켜보는 결단. 삶은 어쩌면 그런 순간들의 축적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생일 케이크 위에 꽂히는 초의 개수를 보며 때로는 남은 시간을 가늠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초는 다가올 시간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시간의 형상이다. 그 초를 끄며 나이를 더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만큼의 시간을 태워 여기까지 왔다는 의미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초는 미래를 예고하기보다 살아낸 시간을 환하게 증언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불을 붙이는 일도 중요하고 또 그 후에 이어지는 타오름이다. 불꽃은 순간이지만 빛은 지속이다. 초는 자신을 녹이며 주변을 밝힌다. 녹아내림은 소멸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 동안 세상은 더 또렷해진다. 삶을 사는 일도 그렇다. 삶은 매일 조금씩 시간을 태우며 살아간다. 그 과정은 소모이지만, 또 발광이다. 닳아간다는 사실은 빛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이 어려울 때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왜 나만 더 빨리 닳아 없어지는 것 같으냐고. 그러나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빛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고단한 시간은 나를 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발하는 빛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포기하지 않은 것, 다시 일어난 발걸음. 그것은 대단하지 않지만 분명히 짙은 시간이다.



때로는 의사가 위급한 환자를 살려냈을 때 그 숭고함에 감동한다. 그러나 더 깊이 의미를 부여해 보면, 그 행위가 고귀한 이유는 소생한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살아낸 것이고 삶이라는 의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이 존귀하기에 그 삶을 붙들고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가 빛을 낼 수 있는 존재이고 그 불붙임의 의미가 크다. 행위의 가치는 언제나 존재의 가치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인간 저마다의 능력은 대단하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빛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때론 자투리 초처럼 짧아 보일지라도, 붙여보지 않은 채 어둠을 예감하며 물러설 필요는 없다. 얼마나 밝힐 수 있을지는, 타오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양초가 바닥까지 녹아 마지막 불꽃을 흔들 때, 그 빛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고요하게 번진다. 삶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더 깊어지는 빛이 있다. 오래 살아낸 사람의 지혜, 수많은 시간을 통과한 이의 침묵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주변을 데운다. 그것은 시간을 견딘 이가 할 수 있는 온기다.



어린 시절의 그 방 안에서, 엄마는 짧은 초에 불을 붙이며 식구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다. 세상은 완전한 준비가 끝난 뒤에야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것에서도 빛은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빛은 늘 누군가를 향해 퍼져나간다는 것.


~~~~~-----==~---ㅇ


인간은 모두 타오르는 존재다. 녹아내리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비추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먼저 불을 붙이고, 누군가는 그 빛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이어지는 불꽃 속에서 세상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삶은 자신을 태워 누군가의 밤을 밝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밤을 건너는 동안 서로의 세상을 다시 살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