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에 매달린 사람

아파트 도색공사가 한창이던 날

by 현월안




아파트 단지에 도색공사가 한창이던 날, 우연히 밧줄하나에 매달린 사람을 보았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단단한 발판도 없이, 오직 한 가닥 밧줄에 생을 맡긴 채 그는 외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 밧줄은 삶을 가르는 경계였고, 공간 사이에 놓인 벼랑의 연결처럼 보였다.



그의 발은 온종일 허공에 놓여 있었다. 아래는 가물가물 아득하고, 위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층층이 이어졌다. 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와 위에는 손 닿지 않는 먼 시간 같았다. 그 사이에서 그의 몸은 미세하게 흔들렸고, 바람은 자주 그를 시험했다. 그럼에도 능숙한 손놀림과 익숙해 보이는 동작들. 가녀린 외줄은 그를 지탱했지만, 사실 그 위에 서 있는 균형은 수십 번의 두려움을 통과한 시간일 것이다.



흔히 안정된 땅 위에 서 있다고 믿으며 산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삶은 본질적으로 허공에 떠 있다. 사다리를 오르든 밧줄을 타든, 책상 앞에 앉아 있든, 삶은 불완전한 지지 위에서 다음 발을 내딛는 연습이다. 한 발을 떼기 위해 다른 한 발을 믿어야 하고,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이 나를 살게 할 것이라는 조용한 확신을 매일같이 반복해야 한다. 삶은 거창한 것의 연속이라기보다, 그렇게 사소하고도 위태로운 것을 견뎌내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외벽에 매달린 그는 도시의 커다란 거미 같았다. 말없이 벽을 타고 오르내리며, 때를 지우고 색을 입힌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위를 스쳐 지나가지만, 정작 그는 그 시선 안에 머물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존재하는 시간, 그것이 그의 노동이고 그의 하루다. 흔히 반짝이는 결과만을 본다. 새로 칠해진 벽면과, 깨끗해진 외관, 정돈된 풍경. 그러나 그 빛 뒤에는 언제나 숨을 고르던 고요가 있다. 삶은 대체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호흡한다.



문득 정글에서 살아남은 거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거미는 탈출의 순간마다 죽음에 그을린 흔적을 몸 안에 밑줄처럼 남긴다고 한다. 그 흔적은 상처이자 증거이며, 다음 생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이다. 외벽에 매달린 그 역시 위험을 몸 안에 품고 살아간다. 위험은 피해야 할 대상이기보다, 함께 다독여야 하고 그는 매일 목숨을 저울에 올려 하루의 무게를 가늠할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얼마나 고요한지를 대부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하루 작업이 끝나고 그가 떠난 자리에는 말끔한 벽면만 남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표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들은 그 빛을 보며 안심하고, 금세 또 잊는다. 누군가의 두려움과 누군가의 하루는 그렇게 결과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그 자리에 누군가의 삶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아주 조용한 증거다.



외줄 타기를 바라보며 삶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삶은 위험을 알면서도 서로를 믿는 일일지도 모른다. 밧줄을 여러 번 확인을 하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동료의 시선,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 그 모든 믿음 위에서 그는 허공에 매달린다. 보통 우리네 삶 역시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밧줄들에 의지해 하루를 건너고, 서로의 손을 완전히 알지 못한 채 다음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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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완벽하게 안전해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정함 속에서 균형을 배우는 과정이다. 허공에 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일. 외벽에 매달린 한 사람의 하루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은유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높이에서 각자의 밧줄에 생을 묶고, 오늘도 조용히 허공을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