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빛을 가진 이들

그 멈춤의 시간은 생각보다 소중하다

by 현월안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들은 종종 한 사람의 인품을 눈빛으로 설명한다. 얼굴의 윤곽이나 옷차림보다 눈의 빛을 먼저 이야기한다. 눈빛은 감추기 어려운 마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도 인물의 품격은 언제나 맑은 눈빛으로 시작된다.



맑고 고운 반짝이는 눈빛이라는 말은 단순한 외모 묘사이기보다 마음의 투명함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얼굴빛이 맑다는 것은 피부가 희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마음의 흐름이 맑다는 의미다. 오래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모두 맑은 눈빛을 가졌다는 사실은 어쩌면 사람을 바라보는 오래된 기준이기도 하다.



봄이 되면서 요즘 인사동에는 예술 작품이 한창이다. 미술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새로움을 찾는다. 겨울의 단색에서 벗어나 그림의 색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전시장을 찾았을 때, 나는 뜻밖에도 젊은 엄마들의 얼굴빛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림 앞을 지나가는 그들의 눈빛이 유난히 온화하고 맑게 보였기 때문이다.



좋은 화장품을 쓰거나 피부 관리를 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어떤 부분이 있었다. 아침부터 아이와 함께 전시장을 찾아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는 시간, 아이에게 색채에 담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얼굴빛을 온화하게 밝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동 전시장에는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초만원이었다. 대부분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었다. 어린 손을 잡고 천천히 그림 앞을 지나가는 젊은 부부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사람들의 눈빛이 원래 맑은 것일까, 아니면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맑아지는 것일까.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두 가지 모두일 것이다. 마음이 맑은 사람들이 이런 공간을 찾기도 하고, 또 그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맑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림을 보며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말 없는 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화폭 위의 색과 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문장을 만들어 낸다. 어떤 그림 앞에서는 오래된 기억이 떠오르고, 어떤 그림 앞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전시장을 걷다 보면 사람들은 조금씩 느려진다. 일상에서 늘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 조용히 멈춘다.



그 멈춤의 시간은 생각보다 소중하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지만, 전시장에서의 시간은 잠시 내려놓음의 시간이다. 그림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하는 뜻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겹 더 깊어지는 일에 가깝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더 많은 풍경을 보게 되고, 같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아마도 결이 넓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맑아지기도 한다. 많은 것을 겪었지만 마음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풍경을 보고 낯선 생각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의 창을 조금씩 여는 이의 눈빛은 자연스럽게 깊고 투명해진다.



어쩌면 유명 화가의 전시나 미술관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림 한 점이 나의 삶을 단번에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앞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의 창이 조금 더 넓어진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모여 사람의 얼굴빛을 바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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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골목을 빠져나오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을 넓게 보는 일은 거창한 여행이나 특별한 공부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한 장의 그림 앞에 서 있는 시간,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전시장을 걷는 시간, 또 조용히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의 창이 넓은 이의 눈빛이 맑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