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것보다 포기한 것이 더 또렷이 다가온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앞으로 간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발걸음은 어떤 것에서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의 선택은 두 방향을 동시에 향한다. 하나는 내가 잡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놓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그것은 기회비용이라 부른다.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다른 가능성의 가치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념은 숫자나 계산을 넘어 삶의 거의 모든 장면에 스며 있다. 인간은 매일 작은 기회비용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누구와 함께하는지, 어떤 길을 택하는지에 따라 수많은 가능성이 조용히 내 곁을 떠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 선택한 것보다 포기한 것이 더 또렷하게 보일 때가 있다. 흔한 예로 결혼을 한 사람은 문득 혼자의 자유를 떠올리고,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안정이 부러워진다. 함께 있을 때는 혼자가 그립고, 혼자 있을 때는 함께라는 온기가 떠오른다. 인생은 종종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의 장점을 번갈아 비추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늦게 깨닫는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의 의미를, 그것이 손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또렷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생은 자주 뒷북을 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지나간 자리에서야 비로소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 보면 선택은 이해의 시작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것의 장점만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기쁨도 있고 불편함도 있다.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
흔히 선택의 장점에는 빠르게 익숙해지면서도, 그 선택이 가져온 포기의 무게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선택이 좋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은 자연스럽게 일상의 색으로 스며든다. 그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가 포기한 것의 그림자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한 방향으로 걸어가면 다른 방향은 자연스럽게 뒤에 남는다. 선택은 가능성의 숲 속에서 한 길을 택하는 일이다. 그 길을 걷는 순간, 다른 길들은 풍경 속으로 멀어져 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느냐보다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선택의 기준은 종종 욕망이 아니라 감수의 의지에서 결정된다. 이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것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더 단단할 때, 그 선택은 흔들리지 않는다.
인생을 '굵고 짧게 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 말에는 묘한 진실이 숨어 있다. 삶이 굵어지려면 언젠가는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어지려면 가늘어져야 하고, 굵어지려면 길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동시에 모두 가질 수 있는 삶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삶은 균형의 예술이 아닐까. 늘 선택과 포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때로는 선택이 옳았는지 의심하고 때로는 포기한 것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삶의 자연스러운 풍경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길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삶을 의심하기보다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들을 천천히 찾아보는 일 말이다. 이미 지나간 가능성들을 붙잡기보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삶의 결을 소중히 다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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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엇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결국 무엇을 포기했는지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포기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선택은 더 이상 후회가 아닌 삶의 방향이 된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을 이해해 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잃으며 살아가지만, 그 잃음 속에서도 또 다른 삶의 깊이를 얻는다. 그래서 인생은 무언가를 얻었다면, 이미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