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감각의 문제가 아닐까
친하게 지내는 작가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대화가 잠시 멎은 사이 그녀가 물었다.
"행복해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다. 기쁜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삶이 특별히 불행한 것도 아닌데, "행복하다"라고 말하려니 어딘가 머뭇거려졌다. 그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 자리에서 그녀와 자연스럽게 "행복이 뭘까?"라는 이야기로 대화는 오래 이어졌어도 뚜렷한 결론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바라며 살아간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행복이라는 말이 너무 크고 막연하기 때문이다. 마치 손에 쥐기엔 너무 밝은 빛 같은 단어다. 분명 어딘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인지 말하려 하면 흐릿해진다.
어쩌면 행복의 모호함은 인간의 감정 구조와도 닿아 있기에 그럴까.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기본 정서를 이야기하면서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과 함께 행복을 들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행복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분명히 규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낯설지 않은 낯섦 때문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판단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흐르는 시간의 방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같은 크기와 길이로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때는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고, 어떤 행복은 계절처럼 천천히 스며든다.
아이들을 키워 모두 떠나보낸 부모들이 종종 말한다. 아이들 키울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그러나 정작 그 시절 속에 있었을 때는 매일 분주하고 고단했을 것이다. 밤잠을 설치고 사소한 일로 걱정하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른 뒤 그때를 따뜻하게 기억한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순간 경험하는 행복과 시간이 지나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는 기억이 또 행복이다. 사람은 실제로 경험했던 순간보다 그 순간을 유리하게 기억하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은 때로 현재를 더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또 쓸쓸하게도 한다.
행복이라는 말이 때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을 너무 거대한 사건에만 마음이 허락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멸의 사랑이나 일생일대의 성공, 혹은 인생을 뒤흔드는 극적인 행운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사건이 아니라면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어딘가 부족한 것처럼 느끼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삶은 대부분 그런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 창가에 번지는 햇살과 따뜻한 차 한 잔과 누군가와 나누는 사소한 농담, 봄을 앞둔 공기 속의 미묘한 향기 같은 것들. 그 모든 것이 너무 작아 보여 종종 그것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거대한 행운이 반드시 큰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오히려 강렬한 사건을 경험한 뒤에는 일상의 작고 미묘한 기쁨에 둔감해질 수도 있는 것처럼.
어쩌면 행복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작은 기쁨을 알아보는 마음이 있을 때 삶은 조용히 밝아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한때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 있었던 적이 있다. 세상이 온통 어둡게 가라앉은 듯한 시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 속에서도 의미를 주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안다. 삶은 원래 그렇게 섞여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슬픔과 행복은 서로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감정이 아니라, 같은 강물 위에 떠다니는 두 개의 빛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설전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또 봄이 오는 것에 마음이 설렌다. 처음에는 그 설렘이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이 끝내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런 작은 설렘 때문일지도 모른다.
꽃봉오리가 막 터지려는 순간을 바라보며 마음이 환해지는 사람.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 이유 없이 걸음을 늦추는 사람. 그런 이는 아픔이 찾아와도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삶의 결 사이에 숨어 있는 미세한 빛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지만, 가만히 두면 어느 순간 내 곁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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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아직도 쉽게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하루에도 몇 번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 삶은 이미 행복의 언저리를 지나고 있다고. 행복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잠깐씩 나를 스쳐 가는 빛을 알아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