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마음 깊숙한 곳에 평생을 붙잡고 사는 무엇이 있다. 어떤 이는 음악을 붙잡고 살고, 어떤 이는 별을 올려다보며 살고, 또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쫒으며 산다. 윤후명 작가에게는 '꽃'이 바로 삶의 중심이었다. 그는 문학을 업으로 삼았지만, 그의 문장 사이에는 흙냄새와 풀잎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마치 글을 쓰는 작가이면서 또 식물을 돌보는 정원사처럼, 그는 꽃을 통해 세상을 읽고 삶을 이해했다.
오래전 우연히 펼쳐든 윤후명 작가의 산문집 한 권에서 느꼈던 놀라움은 아직도 선명하다. 사진 한 장 없이도 꽃을 그렇게 깊고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보통 꽃을 이야기할 때 화려한 색과 모양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꽃으로 삶을 이야기했다. 언제 피고 언제 지는지 또 어떤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지, 어떤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지, 그리고 그 곁에 어떤 사연이 스며 있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냈다. 꽃을 보고 꽃과 함께 살아온 사람의 시선이었다.
윤후명 작가는 한때 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문학이 괴물처럼 다가와 그 꿈을 빼앗아 갔다고 고백했지만, 사실 그는 다른 방식의 식물학자가 되었다. 학명의 분류 대신 시의 언어로 꽃을 기록했고, 잎맥의 구조 대신 삶의 감정을 꽃에 얹어 놓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곰취와 엉겅퀴, 사스레피나무와 용담을 만난다. 그것은 식물의 언어로 말하는 삶의 은유다. 사람처럼 상처 입고 사람처럼 견디며, 사람처럼 다시 피어나는 존재들이다.
특히 엉겅퀴는 거칠고 가시 많은 줄기 끝에서 피어나는 적자색 꽃. 아름답지만 쉽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꽃이다. 그는 엉겅퀴를 바라보며 자신의 간을 생각했다고 썼다. 술로 상한 몸과 삶의 무게를 그렇게 한 송이 꽃에 겹쳐 놓았다. 그 고백은 담담하지만 꽃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곰취를 노래한 시에서는 먹을 것이 없는 계절에 사람들에게 뜯어 먹히기 위해 파릇한 싹을 내민다는 그 구절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인간의 바람이 담겨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뜯어 먹히는 풀 한 포기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마음은, 어쩌면 작가라는 존재의 가장 겸손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양분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꽃은 조용하게 울림을 준다. 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꽃의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땅속에서 오래 기다린다. 또 피어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더 망설이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피어난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긴 시간을 견디는 것이 꽃의 삶이다. 아마도 그 작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꽃에 대한 지식보다 삶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된다. 꽃은 화려함보다 끈기를 말하고, 향기보다 시간을 말한다.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의 인내를 알게 되면 사람의 삶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글은 꽃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인간의 삶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윤후명 작가는 2025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작가가 남긴 글 속에서는 여전히 꽃들이 피어난다. 책장을 넘기면 어느 들판의 엉겅퀴가 바람에 흔들리고, 산기슭의 곰취가 연둣빛 잎을 펼치고, 이름조차 낯선 풀꽃들이 조용히 얼굴을 내민다. 한 사람이 평생을 기울여 바라본 세상의 흔적이다.
어쩌면 그 작가는 정말로 식물학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현미경 대신 문장을 들고, 연구실 대신 자연과 삶을 실험실로 삼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는 시와 산문으로 남았다. 그 글은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가끔 꽃을 보다가 또 길가의 엉겅퀴를 보아도 곰취를 만나면 그 작가가 남긴 삼세한 은유가 떠오른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꽃을 바라보며 쌓아 올린 시간의 두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은 거대한 업적으로 기억되지만, 어떤 삶은 또 조용한 시선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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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마도 윤후명 작가는 환생을 해서 지금쯤 풀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바람 부는 들판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는 작은 꽃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뜯어 먹히며 힘이 되는 풀을 꿈꾸었던 그의 소망처럼, 그의 글은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붙잡고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로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 사람이 평생 꽃을 사랑하며 남긴 글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작은 꽃으로 피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