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볕에 홀린 날

봄 꽃 곁에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by 현월안




봄볕에 홀린 날이다. 봄 볕이 부드럽고, 바람이 사람의 마음을 살짝 건드리는 날이다. 그런 날이면 마음이 먼저 알아차린다. 마음이 먼저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동네 공원 옆에 좌판을 펼친 노점 꽃가게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화분도 넉넉지 않고, 꽃을 놓을 곳도 준비하 않은 채 나는 그만 봄꽃 모종을 덜컥 사고 말았다.



엷은 봄 색을 띠고 오종종 모여있는 봄 꽃들. 연분홍과 보라가 은은하게 섞인 꽃잎은 마치 봄빛을 한 번 더 곱게 걸러낸 색 같았다. 그 봄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던 따뜻한 기억들이 천천히 깨어났다. 꽃은 늘 그렇게 나의 기억을 흔든다. 꽃잎 한 장 속에는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함께 접혀 있다.



봄이 되면 꽃은 어김없이 오고야 만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꽃은 제 시간을 잊지 않는다. 흙 속에서 오래 참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밀어 올린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조용한 약속 같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는 신비.



사람들은 봄이 오면 꽃을 심는다. 그것이 꼭 정원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어떤 이는 베란다에 작은 화분을 놓고, 어떤 이는 마당 한쪽에 씨앗을 묻는다. 또 어떤 이는 마음속에 꽃을 심는다. 그날 나는 작은 모종을 아무 이유 없이 샀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봄빛을 보고 깨어나는 느낌. 사람의 마음도 땅과 닮아서 오래 얼어 있으면 스스로를 잊어버리지만, 햇빛 한 번 비치면 금세 부드러워진다.



나도 모르게 손등이 까매질 만큼 흙을 만지며 꽃을 심는 상상을 한다. 어디든 괜찮다. 작은 화분이어도 좋고, 담장 아래의 좁은 흙이어도 좋다. 그곳에 조심스레 뿌리를 내려놓고 흙을 덮어주면 된다. 그리고 다정한 봄비가 한 번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자연은 참 신비하다. 빛과 물, 그리고 시간이 있으면 생명은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늘 복잡한 이유를 찾지만, 삶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작은 조건들이다. 따뜻한 빛 한 줄기, 마음을 적시는 한 번의 비, 그리고 조금의 기다림.



봄 꽃 봄 볕 곁에 서 있으면 괜히 기분 좋아진다. 나의 하루도 조금은 환해진다. 정말로 기적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꽃이 터지듯 무언가가 삶 속에서 피어날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노다지를 터뜨려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봄은 늘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한다. 아마도 그것이 봄이 가진 힘이다.



겨울은 생명을 잠재우는 계절이지만, 봄은 생명을 다시 살게 하는 계절이다.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면 뿌리는 다시 움직이고 나무는 다시 물을 올리고, 씨앗은 다시 틈을 찾는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작은 순환은 하나의 거대한 질서다.



계절은 날씨의 변화이기도 하고 생명의 리듬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빛의 각도가 조금씩 바뀌고, 그 미세한 차이가 숲을 깨우고 바다를 움직이며 인간의 마음까지 흔든다. 참 신비한 일이다. 우주의 거대한 운동이 한 송이 꽃을 피우게 하고 그 꽃이 또 나의 마음을 흔든다. 인간은 그 연결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봄은 신비하다.


꽃을 심는 일은 즐겁다. 작은 모종 하나를 흙에 묻으며 나는 은근히 기대한다. 언젠가 이 작은 줄기 끝에서 색이 터지고 향기가 퍼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의 하루도 조금은 더 살아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따사로워서 나는 꽃을 샀다. 또 다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봄볕이 나의 마음을 살짝 흔들었기 때문이다.


~~~~~-----==~~---ㄱ


봄은 살며시 온다. 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끝내는 밀려와서 세상을 깨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은 봄 꽃 세상에서 춤을 춘다. 흙냄새와 꽃빛과 햇살 사이에서,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한가운데서 좋아라 한다. 지금이 그런 시간이다. 생명이 조용히 움트는 시간. 그리고 우주 만물이 다시 살아가기를 배우는 시간. 그래서 봄은 예쁘다. 꽃이 피어나고 세상이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