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엄마가 전해 준 봄

봄 볕에 엄마 내음을 꺼내든다

by 현월안




봄은 예뻐서 눈으로 보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온다. 내게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바람 끝이 차가운데도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스며드는 기운, 그 기운의 가운데에는 늘 엄마가 계셨다. 그 옛날 한동안 음력 정월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도착하던 흰 봉투 하나. 봉투 속에는 상형문자처럼 낯선 기호들이 적힌 부적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험한 기운을 막아주는 종이였고, 또 엄마가 나를 향해 건네는 기도였다.



이제 부모님은 세상이 안 계신다. 엄마는 할머니가 다니시던 절을 이어서 절기마다 다니셨다. 엄마는 한 때 정월이면 자식들에게 부적을 건네주셨다. 난 그 부적을 가볍게 여겼다. 들삼재니, 날삼재니 하는 말들이 마치 내 삶을 얽매는 구실처럼 느껴졌고, 그때마다 괜한 투정이 이어졌다. '왜 그렇게 삼재가 많으냐'고, '종이 한 장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그때마다 엄마는 말을 줄이셨다. 그저 '잘 지니고 다녀라'라는 짧은 말만 하셨다.



그 부적은 늘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가 버려지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존재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집안을 구석구석 정리하다가 20년도 더 지난 꼬깃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보였다. 빛바랜 누런 종이 흐릿해진 글자, 접힌 자국마다 쌓인 시간의 결. 더 이상 효험을 기대할 수 없는 종이이지만, 이상하게도 아련하게 엄마 기운이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 종이가 나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아닐까. 사랑에는 여러 모양이 있지만, 오래 남는 것은 대개 말이 없는 사랑이다. 세상에 드러나 반짝이는 사랑도 있지만,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둘러싸고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 사랑이 있다. 엄마의 자식 사랑이다.



부적은 아마도 엄마의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염려와 바람, 그리고 대신 맞아주고 싶은 불행까지 담아낸 기도. 부모의 자식 사랑은 그 어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건 자식을 향해 기꺼이 시간을 건네는 믿음이다.



봄볕에 그 종이를 펼쳐 들었다. 바람이 스치자 얇은 종이가 가볍게 흔들린다.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던 무언가가 이제야 숨을 내쉬는 듯한. 그 순간 사랑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오래 더 깊게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엄마가 떠난 뒤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꽃은 여전히 피고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다. 봄은 참 예쁜 계절이다. 매번 봄은 돌아오고 그 어떤 시간을 비추는 거울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종종 생각에 잠긴다. 내가 그 사랑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또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제 그 부적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고, 내가 기억하게 엄마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랑 속에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조용히 나를 떠받치고 있었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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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리고 올 해의 봄은 더 신비하고 또 하나의 질문이 된다. 어떤 봄이 되고 있는가. 말없이 스며드는 사랑을 알고 있는가. 그 종이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부드럽게 감싸는 향기에서 엄마의 내음을 맡는다. 그 안에 여전히 엄마의 온기가 이어지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