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 중에서 철학을 가진이의 시간은 다르다
문예창작을 공부하던 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 말이 잘 통하던 사람. 교수님이 한껏 칭찬하던 사람. 그녀의 말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철학이 들어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녀 내면에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유난히 짙게 들어 있었다. 그때 친구와 나는 삶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와는 줄곧 문학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또 시간이 나면 그녀와 난 종종 산에 올랐다. 산길의 조용한 시간과 한계를 몰아붙이며 내는 땀방울을 둘은 좋아했다. 산길을 오르며 발걸음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의 무게와 관계의 복잡함, 그리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꿈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때, 그녀는 지방으로 멀리 떠났다. 삶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한 동안 그녀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연락은 점점 뜸해졌고, 어느 순간 완전히 끊어졌다. 그 사이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미국 유학을 떠나며 뒷바라지하며 자신의 공부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후로 소식은 어느 순간 끊겼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다.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 그녀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일 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기획단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했다. 그 친구라면 어디에 있든 자기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 둘은 오랜만에 마주 앉아 두어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간의 공백이 길었지만, 대화는 어제 끊겼던 자리에서 다시 이어지는 듯 자연스러웠다. 서로의 지난 시간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의 말에서 이미 많은 것이 전해졌다.
사람 사이의 진짜 연결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다. 자주 만난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래 떨어져 있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는 그 중심이 있다. 그 중심은 가치와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곳에 들어있다.
그녀와 나는 다시 산에 오르기로 약속을 했다. 그 말은 다시 또 세상의 리듬으로 걸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겠다는 뜻이다. 산을 오르는 동안 나눌 이야기들이 단지 근황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삶의 방향과 선택의 이유, 그리고 여전히 세상의 궁금한 이야기를 다시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분명 달라져 있었다. 시간은 사람을 닳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깊이를 더해준다. 그 친구는 삶의 무게를 견디며 더 단단해졌고, 또 더 유연해졌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섬세한 결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철학을 가진이의 시간은 왜 다를까. 그것은 아마도 서로를 설득하거나 이기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함께 더 나은 것을 찾는 연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삶을 통해 질문이 늘어나고, 또 그 틈에서 삶이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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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공백은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온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헤어지며 우린 서로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네?" 서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말속에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짙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