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낸 그 길

세상 곳곳에 길을 내고 떠난 사람

by 현월안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씨가 작고했다. 걷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녀의 이름과 제주 올레길을 모르는 이는 없다. 걷기의 여행 문화를 느릿느릿 걸으며 지역을 경험하는 여행으로, 여행 문화를 바꿔놓은 이가 서명숙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듯, 소리 없이 바람이 지형을 다듬듯 길을 만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길에서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다.



어떤 때는 여행을 도착의 의미로 이해한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또 얼마나 많이 보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조용히 바꾸어 놓았다.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고 속도가 아니라 여유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걷기는 사유가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이 되었다.



그녀의 시작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 삶의 무게에 눌려 떠난 긴 여정은 제주 올레길을 만드는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떠나고 싶었던 그녀의 고향 제주. 그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람이 있는 곳. 떠나야만 보이는 것들과 잃어버려야만 되찾게 되는 감각들이 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서 얻은 영감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길의 시작은 이미 존재하던 길을 보이게 하는 일이었다. 오래된 골목과 돌담, 바다를 따라 난 오솔길,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풍경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누구의 시선에도 온전히 붙잡히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그 길들을 다시 내고, 다른 시각으로 풀어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구나 걸을 수 있도록.



어쩌면 그녀가 만든 것은 그 자리에 있던 길의 또 다른 해석이었다. 제주라는 장소가 지닌 고유한 색채를, 외지의 감각으로 번역해 낸 한 편의 긴 문장이었다. 그녀의 삶은 두 개의 시간 위에 놓여 있었다. 서울에서 잡지사 20년 근무는 그녀에게 넓은 시야와 단단한 추진력을 주었고, 고향 제주에서는 그 모든 것을 쏟아낼 깊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조폭으로 살아온 남동생과의 화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삶이 다시 만나는 일은 시간을 건너는 일이고, 이해의 깊은 성찰이었다고.



나는 오래전 우연히 그녀의 강의를 들으며, 그녀의 심지가 유난히 부드럽고 단단함을 느꼈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그 안에 있었고 또 그리 날카롭지 않았다. 누군가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는 온기와 닮아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어떤 것보다 그녀는 '그냥 함께 걷자'말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제주 여행을 가서 올레길을 걸으면서 그녀의 말이 떠 올라서 더 천천히 걷게 되었고,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었고 주변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삶의 결을 바꾸는 일이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빠른 사람도 느린 사람도 처음 걷는 사람도 또 돌아온 사람도. 그녀가 만든 길은 사유가 있고 고요하다. 그리고 또 저마다의 호흡으로 걷는다. 누군가는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마음에 담는다. 또 누군가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바람을 맞는다.



한 사람의 생은 끝났지만 그녀가 만들어 놓은 길은 여전히 이어진다. 누군가는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돌담을 따라서 바다를 곁에 두고, 바람을 맞으며. 그리고 문득,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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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남긴 온기는 그렇게 이어진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또 느껴지는 깊이로. 그녀는 길을 만들었고 저마다의 삶에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지금, 어떻게 걷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