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

요즘 먹거리는 넘쳐난다

by 현월안




휴일이 되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뭘 먹을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늘 먹거리는 넉넉하고 푸짐해지고, 속은 더부룩하고 무거워진다. 기름진 음식이 이어지면 자연스레 커피를 찾게 되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는 어느새 '뭐가 좋을'하고 먹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배부름이 넘칠수록 마음 한편에는 공허가 생긴다. 이런 모순적인 모습에서 적당히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문인들이 남긴 그 질문에 묘한 여백을 남긴다. 추사 김정희의 예서대련에서 대팽두부(大烹豆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자식과 손자"라고. 소박한 일상과 절제의 미덕이 짧은 문장에 담겨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주 유배 시절의 추사 김정희는 아내에게 수없이 편지를 보내 먹을 것을 보내 달라 호소했다. 그의 생활은 담백했으나 현실은 배고팠다. 그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 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것이 된다." 거친 말 같지만 그것은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단단한 윤리가 들어 있다. 먹는 즐거움이 삶의 목적이 될 때, 인간은 쉽게 방향을 잃는다. 다산의 문장은 혀의 쾌락보다 삶의 결을 먼저 세우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아내에게 보내는 투정 섞인 편지와 자식을 가르치는 의도가 들어있다.



함열 유배지에서 허균은 또 다른 의미를 보여 준다. 먹을 것이 변변치 않자 그는 예전 산해진미를 실컷 먹고 물려서 손도 대지 않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입에서 군침이 흐른다고 썼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가진 이들은 먹는 데 사치를 다하지만, 늘 부귀로울 수 없다"라고.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균형과 고백이 한 문장 안에서 나란히 쓰여있다.



세 사람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같은 의미를 일러준다. 음식은 삶을 지탱하는 바탕이지, 삶을 대신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먹는다고 풍요로워지지 않고, 적게 먹는다고 결핍해지지도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먹느냐가 삶의 결을 바꾼다.



아무리 산해진미가 있어도 음식 한 접시를 가운데 두고 웃을 때, 온기가 피어나고 마음은 넉넉해진다. '대팽두부'가 말하는 최고의 모임은 사람이다. 음식은 사람을 부르는 매개일 뿐, 중심은 사람 관계다.



요즘의 풍요는 선택의 과잉으로 나타난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심심해서 먹고, 허기를 달래기보다 기분을 달래기 위해 마신다. 그래서 더 절제가 어렵다. 덜 먹는 것과 제대로 먹는 일이 어렵다.



유배지의 글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결핍 속에서 삶을 배웠기 때문이다. 배고픔은 몸을 비우고, 비움은 마음의 기준을 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기준이 서면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게 되면, 무엇이 과한지도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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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지나고 또다시 일상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과하게 먹는 음식이기보다 삶을 먼저 깊이 바라보는 되는 순간이 있다. 먹거리는 적당히 삶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기쁨을 나누는 일임을. 음식은 언제나 적절히 그리고 관계는 따뜻하게 그 옛날 사람들이 고민했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아이러니는 생이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