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준비되지 않은 채로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커다란 상실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은 준비가 되지 않아서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은 삶이 달라질 만큼 큰 고통이기도 하고 긴 시간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더욱이 직계 혈로 이어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다 어찌 혈육으로 나눈 사람과의 그 슬픔을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떠나보낸 사람과 정든 시간만큼 세월이 지나야, 이별의 상처는 아물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기간 동안에 아버지를 여의고, 장례를 다 치르고, 아버지가 쓰시던 눈에 익숙한 정돈되어 있는 유품을 보면서, 쉽게 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어느 것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순간순간 차오르는 슬픔과 흩어지는 정신을 붙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잔잔하게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다시 세차게 요동치는 마음을 잡고 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반듯하고 윤기 나게 잘 정돈된 서재에는 주인 잃은 책들만 가득했다 아버지는 꼼꼼하고 섬세하게 일과를 일기로 남겨 두셨다 특별한 날 행사가 있는 날이면 강조를 하고, 지난 년도와 분석하고 그것을 다시 보는 것을 아주 즐거워하셨다 일 많은 사대부 종가의 종손이었으니, 중심을 꽉 잡고 누구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많은 일들은 아버지의 머리에서 처리가 되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버지의 책무였고, 모든 일을 충실히 공평하게 하셨고 기억하고 기록하시는 걸 좋아하셨다
아버지 서재에는 가득 채워진 많은 양의 족보와 고서적들이 많았다 우리 집은 고조와 증조할아버지까지 이어서 서당을 운영하셨다 동네에서 아주 먼 곳까지 소문이 나서 그 당시 서당은 문전성시였다고, 아버지는 그걸 늘 자랑스럽게 얘기하셨다 우리 집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자와 서예가 제법 익숙한 삶이었다 그래서 한자를 일찍 배웠고 일상에서 쓰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위에서 흐르는 물처럼 몸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처럼 한자 1급 자격증을 공부했다 내겐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이 그 옛날에는 그곳이 학교였으니, 가르치고 학습에 필요한 자료들은 직접 고조, 증조할아버지가 붓으로 한지에 써서 자료로 만든 것이었다 각종 고서들이 학습에 필요한 자료였고 모두 그대로 집에 남아있다 작은 박물관처럼 엄청난 자료들은 아버지 손길로 다독이고 살피고 애정을 가지고 관리하셨다 고서적이 많아서 우리 집에는 고서적 수집가들이 자주 드나들었지만 아버지는 전혀 흔들림 없이 지켜내셨다 아버지의 정신적으로 지탱하는 뿌리는 선조에서 이어지는 그 정신을 그대로 묵묵히 실천하고 이행하셨다
아버지 서재에는 주인을 잃은 고서들이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순간순간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이 저 밑에서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과 두려움이 뒤섞이는 것은 앞으로 이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주인을 잃은 곳간 같았다 그것도 예쁘고 풍요로운 곳간이었다
'참 예쁘게 관리하셨구나!' 이런저런 생각에 갈 곳을 잃은 마음처럼, 찬바람 한 자락이 온몸을 휘감으며 서걱서걱한 기분이었다 바닥까지 내려앉은 듯한 허전한 마음으로 한쪽 구석에 기대어 앉은 내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알 수 없는 느낌과 헛헛하고 텅 빈, 빈 껍데기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빈 깡지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에서 느끼는 슬픔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머리와 가슴에 아련하게 밀려오는 아픔으로 꽉 들어차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묵직한 고통과 그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이 되질 않았다 오직 부모에게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하고 따뜻함이 그곳에 있었다 마음의 뿌리를 그곳에 두고 함께 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물 밀듯이 다가왔다 직계 혈로 만들어진 사람들에게만 통할 수 있는 그 순수한 감정이 그 속에 있었다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있는 순수한 감정이 아버지 곁에 있었다 남동생의 사업이 힘든 고비가 왔을 때, 그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절절히 아파하시던, 그 모습은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이었다 반드시 해결하려는 아버지의 의지 덕분에 사업의 흐름이 해결되었다 때론 부모 형제의 기분 좋은 소식이면, 그 누보다도 함께 축하하고 해맑고 투명한 웃음은, 그곳에만 있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맘껏 웃을 수 있는 편안함이 그곳에서 함께 있었다 모든 것이 부모님이 함께 계셨던 울타리 안에서 아버지의 힘이 함께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언젠가 이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혈육의 연으로
이어진 아버지 하고 이별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너무 혹독해서, 예리한 칼로 살갗을 베는 듯한 아픈 통증의 순간이, 여러 번 지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아버지와 자식의 끈이 그리 쉽게 놓아지질 않았던지, 몸부림의 절규가 울부짖듯이 토해내었다 나 자신도 처음 접하는 낯선 감정이 최대의 감정으로 밀어 넣어 슬픔과 고마움과 아픔이 뒤섞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는 부모 자식이라는 위대한 이름, 그 끈을 아버지는 어떻게 그 손을 놓고 가셨을까 가슴에 사랑이 가득했던 분이 어찌 자식의 손을 놓았을까 그리도 쉽게 놓은 수는 없었을 텐데, 마치 생이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 없이 놓고 떠나는 것이라고, 삶과 죽음이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 관계에서 인간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고 사람들 관계에서 질서를 알게 해 주신 아버지의 삶은 고급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종가의 종손으로 일 많고 분주했던 삶과 자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고민해 주시던 아버지는 자식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숨결이었다 그 손을 그 연을 이제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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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그 울타리였기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 저편에 있는 나의 편안한 기억은, 마치 푸르른 숲 속에 잘 가꾸어진 그늘 아래서, 옆으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여유 있게 놓인 벤치에 잠시 쉬어가며, 때로는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모두가 아주 천천히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걷는 것"과 같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기억 저편에서 "편안하게 뿌리를 내리고 바르게 마음 둘 수 있었던 것"은 사랑으로 만들어진 아버지의 커다란 울타리가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식보다 한 발짝 앞서서 우릴 이끌어 주셨기에 나는 아버지의 흔적을 기억해야 하고 흔하지 않은 특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기본인가를 자연스레 알게 해 주었던 그 "울"은 나의 삶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