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많은 생각이
빗소리는 비 맞는 세상이 내는 소리
장맛비가 주룩주룩 제법 세차게 내린다
비엔 슬픔의 냄새가 들어있다고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진한 기억을 머금고 있다
비 오는 날은
무채색처럼 아늑함이 가득하고
비 오는 날이 주는 묘한
분위기에 동요된다
비 내리는 창밖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커튼 한 겹 가려진 것처럼 운치 때문이다
설렘과 차분함이 섞이어
기억 저편 그날의 기억을 꺼낸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과
세월에 밀려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들이 뒤섞인다
알맞게 익은 술은
마시면 취하는 것이지만
비 오는 날엔 마시지 않고
빗소리 듣는 것만으로 도수 높은
술을 마신 것처럼 묘하게 취한다
내리는 빗줄기만큼 그때 그 기억이
상기되어 차분하게 일렁인다
다시 빗줄기가 거세진다
타닥타닥 성난 빗줄기는
미처 풀지 못한 노여움 같기도 하고
하늘이 노하기라도 한 것처럼
세차게 뿌릴 땐
다소곳이 겸손해지는 감정들
장마라서 강하게
세차게 아주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멈추지 않는다
빗소리가 익숙한 것은 인류의
오래된 문명 같은 것
지혜롭게 빗소리와 함께 진화한
인류이다
모두가 들리나요? 저 빗소리
비는 소리가 없다
그저 빗소리는
비 맞는 세상이 내는 소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