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무채색 비에 젖어드는 생각들
빗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다가오는 여유
게으름을 피운다
비가 내리는 것으로
잔잔하게 다가오는 고요한 멈춤
느리게 몸이 늘어진다
생각을 잠시 놓아둔다
빠르게 내달리며 살던 생각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가 그치면 무엇을 할까
생각의 꼬리를 문다
비가 그치면 여름 한가운데서
폭염과 마주하며
덥다고 투덜대겠지!
그러다 보면
슬그머니 가을이 찾아오겠지!
가을에 젖어서
가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갈 테고,
그러다 보면 찾아오는 연말
딸이 내게 묻는다
"엄마~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시간이 다 지나갔어요~"
대답 대신 그냥 웃는다
속으로
"젊은 너도 그러니?"
잡아두지 않으면
술술 빠져나가는 시간들
잡아두지 않으면 쏜살같이 도망가는 시간
시간은 유유히 흘러간다
티끌과도 같은 날들이어도
알맹이 가득 찬 또렷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지금 곁에 잡아두지 않으면
모두 헐렁한 시간들 뿐
삶이 어제보다 얇아진다
바람이 또 비가
자꾸만 내 남은 삶을 저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