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길게 드리우는 인사동은 가을이 충분히 익어가는 모습이었다. 전시장마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인사동은 늘 그렇듯이 예술이 있는 곳이고 개성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하게 묻어있는 곳이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섞이어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옷을 겹겹이 겹쳐 입은 긴치마 차림의 집시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가녀린 여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야윌 대로 야윈 몸과 정돈되지 않은 머릿결에 때가 꼬질꼬질 묻어있다. 눈빛은 45도 각도로 치켜뜨는 그녀만의 반복되는 행동이 보통예사롭지 않았다.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몸의 상처들이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녀는 상처 난 가죽케이스를 열어 주섬주섬 바이올린을 꺼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뿌연 세상 끝없는 두려움과 홀로 세상에 남겨진 듯 위태롭게 보였는데...
바이올린 다루는 모습은 다른 세상이었다.
바이올린 연주가 고급스러워서 깜짝 놀랐다.
조용히 그녀의 연주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지갑에서 한잎 두잎 자연스럽게 꺼내 놓았다.
반복적으로 위로 치켜뜨는 눈빛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한쪽어깨 위로 올려진 바이올린과 한 몸이 되어 아름답게 연주하는 모습은 그녀가 가장 자유로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곡의 연주를 마치고 중간중간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녀가 심리적으로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횡설수설 장황하게 꺼내놓은 이야기들은 서로 엉키어 있는 말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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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그간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삶에서 어떤 진한 폭풍을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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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가 죽을 것처럼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당연히 되는 일은 없을 때가 있다.
나쁜 일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생의 바닥까지 주저앉아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고통이 온몸을 짓누를 때가 있다.
삶을 이겨내고 인내해도 똑같은 삶이 반복될 때
대부분 절망하게 된다. 그럴 때 발버둥 친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서 애쓴다.
누구든 진한 삶을 마주 할 수 있다.
인사동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삶에서 만난 폭풍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는 회색빛의
잔잔한 담채는 인간 내면의 슬픔을 표현한듯했다.
침묵으로 채워진 공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폭에서 떠오르는 공허의 빛이 느껴졌다.
그 공허의 침묵은 어쩌면 세상과 유일하게 통하는 창문일 것이다.
집시여인이 들려준 바이올린 연주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그녀만의 손짓이었을 것이다.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도 반드시 희망은 있다. 희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선율이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처럼 가냘픈 희망의 빛이 언제든 빛나면 좋겠다.
사람들 속에서 그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소리가 그녀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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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선율이 주는 위로의 힘을 다시금 되뇌며 꿈속에 든다. 내 안의 깊은숨을 몰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