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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을 채우는 일

by 현월안


색깔이 아주 예쁜 가방을 샀습니다


아무리 작은 가방을 사더라도 생각의 짐이

가벼워지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기분으로 주머니가 열리고 말았어요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가방이 나의 연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저를 고르게 된 샘이지요

생각의 방을 꾸미지는 않고 가방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또, 사방이 성을 만들고 나의 공간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사야 할 테고 가방에 더 넣을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 이리저리 가방 크기에

고민하며 색깔을 탓하고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이리저리 또 생각을 빼앗기겠지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더 멋지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이

평평한 길을 가도 가도 제자리인 것처럼

버거울 때, 그 무거움이 굳은살을 만들고 너무

힘겨워서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다가올 때면


그럴 때마다 나는 헛되이 무언가는 사겠지요

채울 수 없는 빈 방을 내 안에 들여놓는

일처럼, 또 그렇게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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