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떠나는가
떠난다
집을 잃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배우기 위해,
눈부신 이국의 빛 아래서
낯선 언어가 입술에 머뭇거릴 때,
비로소 말이
얼마나 오랜 시간,
감싸온 고향이었는지 깨닫는다
여행은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나의 눈이, 귀가, 손끝이
낯선 땅에 남기고 가는 흔적은 무엇인가
어쩌면 여행은
돌아옴이 아니라 떠남 그 자체가
본질일지도 모른다
귀환은 착각이고,
삶은 끝내 돌아가지 못하는 항해.
그래서 떠도는 자가 된다
머무름보다 길 위에서 더 편안한 자,
낯선 것에 몸을 열어
세상의 풍경과 타인의 목소리를
자신의 심장 안에 옮겨 심는 자,
여행이 끝나고 남는 것은 풍경이 아닌
사진도 아닌, 기념품도 아니다
남는 것은
또 다른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
어제의 내가 모르는 나를
오늘의 내가 만났다는 사실.
언젠가,
시간의 먼 언덕에서 돌아보면
삶 자체가 하나의 긴 여행이었음을,
언젠가 알게 된다
'여행의 이유'는 묻는 일이 아닌
그저 '사유'하는 것이라고,
왜 떠나는가?
그것은 왜 사는가와 같은 물음,
발걸음은 끝내 멈추지 못한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계속 떠난다
떠남 속에서만
비로소 누구인지,
조용히 답을 얻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