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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시간, 양평

오래된 시간과 마주하다

by 현월안



가족들과 양평주변 여행을 했다.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고 양평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넉넉한 시간이었다. 계곡물은 쉼 없이 흘러내리고, 바람은 소나무 숲 사이로 부드럽게 흔들리며, 걸음을 내딛는 마음을 가만히 두드렸다. 숲길을 따라 걷고 또 맛집을 찾아, 여유롭게 발길을 내딛는다.



천년 세월을 품은 고찰 사나사에 들어서면, 대적광전 앞마당의 고요가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오래된 석탑과 범종, 굳세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여백이 많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번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잠시 고요하고 평온함을 마음에 새긴다. 불교의 삼신불 중 하나인 노사나불의 이름을 따온 ‘사나사’는 자비와 지혜의 상징한다. 사찰의 고요는 무수한 세월을 관통하며 깎이고 다듬어진 깊은 지혜의 결이다.



사찰을 나서고 이재효 갤러리에 들어갔다. 돌과 나무, 못과 낙엽 같은 일상적인 것들이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있다. 허공에 매달린 돌덩이들은 중력을 거스르듯 떠 있으며, 관람객을 끝없는 상상의 우주로 끌어들인다. 무겁고 단단한 돌이 공기처럼 가볍게 떠 있는 풍경은, 인간의 짧은 생과 대조되는 영원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은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꾸어 보여주고,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일상과 무거움이 다른 풍경이 된다.



마지막으로 100년의 시간을 간직한 지평양조장에 들어갔다. 누룩의 향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공간, 그곳에서 마신 한 잔의 막걸리는 세월의 맛이었다. 왕겨를 두껍게 채워 단열을 삼던 옛사람들의 지혜가 보였다. 양조장은 시간이 한 자리에 쌓이고 살아남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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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고요와 갤러리에서의 상상과 양조장에서의 역사는 자연의 시간, 예술의 시간, 사람의 시간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삶은 흘러가지만, 흘러간 자취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남아 있는 듯했다. 돌계단에 내려앉은 종소리처럼, 계곡에 스며든 물소리처럼, 누룩 향으로 퍼져 나가는 삶의 향기처럼 넉넉한 시간을 내어주었다. 고요히 가라앉고 오래된 시간 속에서 우리 가족은 넉넉하게 쉼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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