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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파스텔 색감

언제부턴가 옷 색깔이 비슷

by 현월안




오래된 모임에 나가면 사람마다 옷이 자기 자신을 대신해 말을 건네는 듯하다. 누군가는 명품으로, 누군가는 유행으로, 또 다른 이는 발랄한 젊음을 입고 나온다. 세월이 흐를수록 묘하게도 눈길을 잡아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비슷하게 옅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선선해지면 더 그렇다. 캐시미어의 따스한 결에 은은한 아이보리, 소프트 그레이, 연핑크 같은 색감들을 선호한다. 모임에 모인 이들의 옷차림은 마치 서로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부드럽고 포근한 색상이고 한 폭의 그림을 이루어낸다. 단순한 취향일까, 아니면 시대가 이끌어가는 흐름일까.



돌아보면, 예전의 중년은 알록달록한 무늬와 화려한 색채를 즐겼다. 그때의 엄마 역시 붉고 푸른 꽃무늬가 가득한 블라우스를 즐겨 입으셨다. 그 옷은 생의 활기를 나타내는 표현 같았다. 지금의 중년은 다르다. 화려한 원색 대신 엷은 파스텔을 즐긴다. 눈에 띄기 위해가 아니라 어울리기 위해 색을 입는 것이다.



옷을 고를 때 흔히 나의 취향에 맞춘다고 말한다. 실은 그 취향이라는 것도 관계 속에서 길러지고 다듬어진다. 누군가의 선택을 참고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때로는 조용히 따라 한다. 옷은 내 몸을 감싸는 보호이고 관계를 짓는 표현이고 시대와 교감하는 방식이다.



엷은 파스텔을 선택하는 것은 화려함보다 조화로움과 개성보다 온기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삶이 인간에게 알려준 것이다. 인생의 무늬는 이미 충분히 복잡하니, 옷만큼은 단순하고 잔잔하게 빛나도 된다는 그런 뜻 아닐까 싶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도 옅은 색의 옷을 선호하고 있다. 무난하다는 말이 주는 안도감, 파스텔이 주는 온화함이 어느새 내 마음을 끈다. 옷은 시대의 유행을 표현하고 또 마음을 비춘다. 그 안에는 나의 취향도 포함되어 있고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세월이 새겨 넣은 철학이 함께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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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로의 옷차림이 비슷하게 겹쳐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은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증거이고, 같은 시대의 빛깔을 입고 살아가고 있다는 작은 알림이다. 화려함 대신 은은함을 좋아하고 과시 대신 어울림을 택하는 파스텔 톤을 선호하는 사람들, 그 부드러운 색감 속에 모두 인생이 잔잔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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