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편견
사람은 보통 세상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 누군가를 보며, 어떤 직업을 떠올리며, 이미 마음속에서 빠르게 판단한다. 그 판단이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는 일은 얼마나 많던가. 겉모습 하나와 말투 속에 혹은 타인의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주변을 단정 지어버린다. '예술가라면 자유로워야 해', '철학자는 고독할 거야', '성공한 사람은 바쁠 거야' 이렇듯 세상을 구분 짓고, 그 구분 안에서 안도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사람은 단 한 줄로 요약될 수 없다.
철학자 칸트의 하루는 시계처럼 정확한 것으로 유명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명상으로 하루를 열고, 강의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고, 그리고 독서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의 규칙적인 일상은 그의 깊은 사유를 지탱했고, 그의 철학은 그 단단한 일상에서 태어났다. 그와 달리 예술가 피카소는 매 순간 불규칙한 삶 속에서 창작의 불꽃을 피웠다. 그의 예술 세계는 혼란이었지만, 그 혼돈이야말로 그의 걸작 예술이었다.
누가 옳다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질서 속에서 피어나는 사유도 있고,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도 있다. 정확한 시간에 시계를 맞추는 칸트의 발걸음과,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며 붓을 든 피카소의 손끝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완전함의 다른 얼굴이다.
어쩌면 모두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너무 서두르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면 금세 판단하고, 사건을 접하면 즉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그 중간 어딘가, 은밀하게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과 누군가의 침묵 속에 담긴 무심한 말투에 감춰진 그가 가진 상처일 것이다.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 속에 숨은 성실하고도 섬세한 것들은 쉽게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만났다. 그녀와는 아주 가끔 여러 사람 속에서 만나는 정도라서 그녀를 겉모습만 기억을 한다. 늘 평소대로 그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찢어진 반바지를 입고, 민소매 티를 입고 넓은 챙이 달린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왔다. 처음엔 그 자유분방한 모습이 그의 예술성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함께 이야기하며 알게 된 건, 그는 누구보다 꼼꼼하고 계획적이었다. 그림 전시 문제 때문에 갤러리와 서로 의견을 맞추는데도 더 좋은 방향이 될 때까지 완성도 있게 고뇌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겉모습만 알던 그의 자유로움은 진심의 다른 형태였다. 그 순간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이 다를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어쩌면 모른다는 겸허함 속에 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채 바라보면, 세상은 훨씬 더 다채롭다. 모르는 채 들어보면, 사람의 말속에는 예상치 못한 온기가 있다. 모르는 채 사랑해 보면, 그제야 진심이 시작된다.
편견이란, 어쩌면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세운 울타리일 뿐이다. 그 울타리를 넘어설 때, 비로소 사람을 본다. 그때의 앎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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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많은 부분 모르는 채 살아간다. 그 모름 속에서 배우고 또 사랑하고, 때로는 다투며, 또다시 이해한다. 그것이 삶이고, 그 모름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대부분의 삶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를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 그리고 모르는 마음이, 나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