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에 풍기는 모과향기

모과 향은 시간의 농축이고 진한 기억의 은유다

by 현월안




그 옛날 엄마는 모과나무를 아끼셨다. 사람들은 모과를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못생긴 외모를 타박하지만, 그 울퉁불퉁하고 쭈글쭈글한 형태야말로 모과가 품은 고귀한 아름다움이다.



모과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듯한 모양새. 그 불규칙함 속에서 모과는 봄에는 연분홍빛의 옹기종기 앙증맞은 꽃으로 화사하게 피어나고, 여름에는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으로 둘러쳐진 싱그러운 잎에 야생의 증거인 반점을 새겨 넣는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이름 그대로, 그 울퉁불퉁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의 향기를 응축한 듯한 진한 향을 품어낸다. 겨울에는 모든 것을 비운 나목의 줄기가 윤기가 자르르 흘러 하루도 나무의 품위를 잊지 않는다. 마치 조선의 달항아리가 품은 넉넉하고 따뜻한 모과의 아름다움은 그 거침과 미완성 속에 있다.



모과나무의 향기는 단순한 향이 아닌, 시간의 농축이고 기억의 은유다. 고향 집 뒤뜰에는 모과나무 두 그루가 세월을 견디며 서 있다. 가을이 깊어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가 뿜어내는 진한 향기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것을 넘어, 곧 겨울이 온다는 고향 집만의 따뜻한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 향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모과를 참 좋아하시던 엄마가 계셨다.



엄마는 매년 가을, 그 울퉁불퉁한 모과 열매를 귀한 보물처럼 다루셨다. 서리를 맞지 않게 조심스레 따서 찬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고이 보관해 두었고, 그 모과가 가진 모든 거칠음은 엄마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 속에서 부드럽게 용서되었다. 겨울이 되어 식구들에게 감기 기운이 돌거나 기침이 잦아지면, 엄마는 보관해 두었던 모과를 꺼내 정성껏 썰고 꿀에 재어 달콤하고 따뜻한 모과차를 만들어 주셨다.



모과차 한 잔은 단순히 민간요법이 이지만. 그것은 엄마의 품이었고, 자식을 염려하는 정성이 담긴 사랑의 표현이었다. 엄마 손으로 데워진 따뜻한 모과차를 마시면 거짓말처럼 기침이 사라졌다. 엄마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임을 알았다. 엄마는 모과차를 만들 때마다 '이 쭈글쭈글한 못난이가 향이 진짜 진하단말여~' 하셨다.



지금은 그 달콤한 차를 만들어 주시던 엄마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고향 집 뒷마당에는 아직 모과나무 두 그루는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연휴기간 고향에 갔을 때 보았더니 올해도 모과가 많이 열렸다. 쭈글쭈글하고 못생겼지만, 강렬하고 넉넉한 향을 품은 모과나무처럼, 엄마의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한 향기로 내 삶의 한가운데 남아있다.


~---~~~---~~~.,,.,.,...,

올해도 고향집을 지키고 사는 남동생이 늘 하던 것처럼 모과가 다 익으면 누나들에게 보내줄 것이다. 그 울퉁불퉁한 모과를 가지고 엄마가 가르쳐주신 대로 꿀을 넣어 모과차를 만들 예정이다. 그 진한 향을 품은 모과차를 만들어 두었다가 추운 겨울 가족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줄 차례다. 모과나무는 엄마의 깊은 사랑과 삶의 진정한 가치를 담은, 고귀한 나무이자 향기로운 유산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