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이 지천에 피어 있다
가을, 이 계절에 가을꽃이 지천에 피어있다. 사랑의 언어라고 하는 코스모스를 빼놓을 수 없다. 맑은 하늘의 푸름이 깊어지고, 서늘해지는 바깥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 그 상쾌함과 함께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군무는 가을이 내 곁에 소리 없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가장 아름다운 신호다.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너울거리는 코스모스 무리는 한 폭의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수채화다. 더욱이, 그 꽃은 땅을 가리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도 기어이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생명력은, 우리네 삶이 지닌 겸손한 품성이 아닐까. 그 강인함 속에 숨겨진 여린 미소, 그것이 코스모스가 전하는 철학이다.
시선을 돌려보면, 길옆에서 작게 속삭이는 듯한 쑥부쟁이가 눈을 맞춘다. 여린 보랏빛 꽃잎 중심에 자리한 노란 꽃술은, 가을의 외로움을 감싸 안는 따뜻한 동반자 같다. 그 고요한 색의 조화 속에서 비로소 가을의 깊은 정취와 마주한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모습이 더욱 단아한 구절초는, 꽃의 독특함 외에도 약초로서의 유용함을 인간에게 선사하고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에 또 다른 정감을 더해준다. 아홉 번 꺾이는 풀이라는 이름처럼, 세월의 굴곡을 이겨낸 지혜가 담긴 듯하다. 그리고 기린초는 또 어떤가. 황금색의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주로 바위틈이나 척박한 땅에서 자라며, 야산 등반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생명의 신비와 조우하게 한다.
가을을 말하면서 국화과에 속하는 산국, 혹은 소국, 들국화의 매혹적인 존재를 어찌 빼놓을 수 있겠는가. 개량되어 어른 주먹 크기를 넘는 화려한 개량 국화꽃들의 도도함보다는, 군집하여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를 품어내는 들국화야말로 가을의 품격 있는 상징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언덕 기슭이나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도 생명력을 발휘하여 가을의 정취를 한껏 높여주는 소국, 들국화는 가을과 함께 산언저리를 풍요롭게 만든다.
들판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망초, 그 사촌 격인 개망초는 단순함 속에서도 자기 특색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쓸쓸해지기 쉬운 들판을 한결 포근하게 감싸준다. 단순하고 꾸밈없는 옅은 보라색 꽃잎은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감지할 수 있는 그윽한 진가를 품고 있다. 마치 진정한 사랑이 요란하지 않듯, 야생화들은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드러낸다.
가을꽃들은 대부분 화려하지 않으나, 고유하고 단순한 모양의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한다. 낮아지는 바깥 기온에 순응하고 대부분 작은 잎사귀와 가는 줄기를 갖추고 있지만, 생명력은 어떤 식물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경이롭다.
길거리에 군집하여 바람에 흔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그때 모두의 애창곡 하나를 흥얼거리게 된다. 내 마음의 떨림이 꽃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사랑스러운 교감의 순간이다.
잠시 눈길을 아래로 낮추면,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웠던 별꽃이 그 앙증스러운 작은 노란색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땅에 거의 붙어 있으면서도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고, 한여름 잠깐의 휴식 후 가을날에 다시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쪼그리고 앉아 작은 꽃의 모습을 한참 감상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 함께한 별꽃이 나의 고독을 알아낸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이 생긴다.
또 억새가 은백색의 깃털 모양으로 인사를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의 모습은 가을의 깊은 상징이 되기에 충분하다. 습지에 다다르면 갈대를 마주하고, 또 다른 가을의 정취를 마주한다. 모든 야생의 풍경은, 자연과의 깊은 대화이자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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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가운데에서 야생 꽃들을 즐기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면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가을을 온전히 품어내고 있다. 단풍도 아름다운 한 폭의 조화를 이룬 가을꽃이다. 모든 색채의 조화는 자연이 선물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이고, 깊은 깨달음의 은유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가슴을 담으며 풍요와 감동 속에서 사랑스러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